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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갱단부터 공무원까지… ‘밀매 천국’ 된 베네수엘라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유가 하락으로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한 베네수엘라에서 해외로의 생필품 밀매가 성업하면서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갱단, 공무원, 군인 할 것 없이 제 살 길을 찾아 호구지책으로 나서고 있지만, 식품ㆍ의약품 등 국내 물자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불합리한 보조금 정책이 밀매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각종 불법 거래 규모는 한 해 20억 달러(2조4330억 원)에 달하며,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와 수입 식품의 30%, 상품의 40%가 밀매로 빠져나간다고 20일(현지시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로이터 역시 베네수엘라 국경 전역에서 당국의 감시를 벗어난 밀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사진=123rf]

베네수엘라 북동부 공해상에서는 가스를 파는 어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동쪽 국경과 맞닿아 있는 가이아나의 수도 조지타운에서는 베네수엘라에서만 판매된다는 표시가 있는 밀가루가 팔리고 있다. 콜롬비아와의 국경 인근에서 닭을 키우다 최근 밀매업에 발을 들인 알레한드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군인이며, 교사, 기술자, 의사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이곳에 와서 가솔린을 판다. 월급은 이제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밀매가 성행하게 된 이유로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 꼽힌다. 국내에서 싼 가격에 사서 해외에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석유보조금이다. 베네수엘라는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 덕분에 시중 기름값이 세계에서 가장 싸다. 리터 당 가솔린값은 우리돈으로 20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4만리터 탱크를 가솔린으로 가득 채워도 10달러밖에 들지 않는데, 이를 가져다 콜롬비아에서 팔면 2000배의 가격에 팔 수 있다. 쌀 역시 공식적으로는 1㎏ 당 16 볼리바르지만, 베네수엘라 내부 암시장에서는 30배의 가격에 팔리고 해외로 내다 팔 경우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베네수엘라에서는 보조금이 지원되는 상품을 타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재판매에 나서는 사람들을 ‘바차퀘로(bachaquero)’라고 부른다. 이들이 상품을 받아다 나르는 모양새가 잎사귀를 나르는 개미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바차퀘로로 일하는 데서 오는 이득이 워낙 커서 아예 기존 일자리를 팽개치고 전업으로 나서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공식 환율과 암시장에서의 환율 간 격차가 크다는 것 역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베네수엘라의 공식 환율은 ‘CENCOEX’, ‘SICAD’, ‘SIMADI’ 등 3가지인데, 이 중 볼리바르의 가치가 가장 높은 경우 1달러당 6.3 볼리바르에 거래된다. 암시장에서 1달러 당 900 볼리바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15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해외에 상품 밀매 대금으로 달러를 받아 국내에서 환전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테미르 포라스 전 외무차관은 “가난한 사람한테 보조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조금이 밀매를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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