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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문호진]박진영의 한류, 더 치밀해야 한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장면. 앨리스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사물들이 전혀 위치를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달렸다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텐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붉은여왕이 꾸짖는다. “그것 참 느려터진 나라로구나. 이 나라에서는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힘껏 달려야만 한단다. 자리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만 하지.”

시카고대학의 진화학자 밴 베일런은 이 이야기를 생태계의 쫓고 쫓기는 평형관계를 묘사하는데 사용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와 영양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상대방 또한 더욱 빨리 달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하게 제압하지 못한다. 결과는 겨우 배를 곯지 않을 정도. 그러면서도 치타와 영양 둘 다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이런 진화론적 원리를 ‘붉은여왕 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는 생물계 뿐만아니라 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외부환경이 기업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은 회사가 망한다는 뜻이고 스스로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경우에만 성공한 회사가 된다.

새삼 붉은여왕 얘기를 꺼낸 것은 JYP대표 박진영 때문이다. 그는 걸그룹 원더걸스를 미국에 진출시켜 ‘빌보드 Hot 100’ 76위에 올려놓은 후 굳이 미국에까지 가서 사서 고생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예계는 센 물살과 같아서 제자리에 있으려고 하면 뒤로 떠밀려 내려갑니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야 겨우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가려고 해야만 겨우 조금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타고난 ‘딴따라” 인줄만 알았던 박진영이 ‘뇌섹남’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몇해 전 싸이가 코믹한 말춤으로 세계를 강타한 것은 박진영이라는 한류 개척자가 ‘맨주먹 붉은 피’로 고군분투한 축적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진영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지평을 세계로 넓히려면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탈피해야한다는 점을 평소 역설했다. 순혈주의로는 한류의 글로벌화가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대만 태생 쯔위를 발탁한 것도 최대시장인 중화권을 잡기위한 포석이었다. 걸그룹 트와이스에서 쯔위는 단연 돋보였고 인기절정인 AOA 멤버 설현의 대항마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쯔이가 인터넷 방송 중 무심코 대만국기를 흔든게 양안의 정치적 쟁점으로비화돼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렸다.

쯔위의 동영상 사과로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려했던 박진영은 한ㆍ중ㆍ대만 3각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다국적화되고 팬덤 현상 역시 나라의 경계 밖으로 퍼져나가는 시대에 사후 대처는 회사를 휘청거리게 한다. 아이돌 다국적화 시대에 걸맞은 매뉴얼로 리스크 일상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가수, 프로듀서, CEO로 진화해온 박진영은 이제 CRO(Chief Risk Officer)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한류경쟁력은 치열함과 치밀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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