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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쌍한 아이들③] 선행학습, 인성 망친다
초등학생이 미ㆍ적분…학업 스트레스에 자살충동
전문가, 선행학습 스트레스로 정서장애와 돌발 행동 초래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 초등학교 6학년 A(12)양은 겨울방학을 맞아 과학고 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그나마 이것도 친구들보다 늦었다. 옆집 사는 동갑내기 B군은 이미 중학교 수학 과정을 마치고 미ㆍ적분까지 배운다. B군은 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고 있다. A양은 엄마의 성화에 새벽 2시 30분까지 학원 숙제를 마친다.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야 되는데도 말이다. A양은 자기도 모르게 “죽고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학업 스트레스에 아이들을 짓눌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선행학습규제법 등도 통과되면서 학교 정규 교육과정 및 방과 후 학교 모두 선행 교육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교육 업체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학원가가 밀집한 대치동 일대에서 흐르는 말이 있다. ‘유유익선(幼幼益善)’의 법칙이다. 선행학습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는 뜻이다. 영어 선행학습은 유아 때부터 시작한다. 영어 유치원ㆍ학원을 다닌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수능 만점을 목표로 공부한다. 몇몇 학원들은 미국 고교생들이 대학 과정을 미리 배우는 AP코스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친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영어를 끝낸 아이들은 수학을 잡으러 간다. 특목고ㆍ자사고ㆍ의대 진학 대비 프로그램은 평균 3~5년 정도 수학 진도를 선행학습한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 1만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때 고교 영어ㆍ수학 과정을 선행학습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5%에 달했다. 중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했다는 초등학생은 22.1%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선행학습은 효과가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선행학습이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장애와 돌발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행학습은 단순한 지식전달과 암기를 통한 문제풀이만 하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이어 “학원에서 과도한 과제를 받으면 아이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높은 난이도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며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ㆍ불만에 성격장애로 이어지거나 돌발 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다. 한림대 정신건강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자살한 청소년 118명 가운데 26.8%는 성적 문제를 고민하다 목숨을 끊었다. 한국방정환재단이 전국 초등학생 209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4.1%의 초등학생은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은 “학부모들은 부작용을 인식하고 욕심을 내려놔야 하고, 학교에서는 시험을 어렵게 내지 않고 배움의 기쁨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다” 말했다. 이어 “선행학습방지법이 현재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사교육업체 광고만을 규제하는 반쪽짜리 법이다”며 “광고를 확실히 단속하고 더 나아가 사교육업체들의 선행학습 교육 자체를 완전히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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