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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회주의 VS 절차주의, 선진화법 개정 鄭의 결단만 남았다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철저한 의회주의자이자 국회법의 수호자’.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다.

정 의장은 고비마다 두 개의 원칙을 적절히 융합하며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쟁점법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당청의 동시압박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정 의장은 친정인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거듭된 직권상정 요청에도 국회법을 내세우며 여야의 합의를 끊임없이 종용했다.

그러나 완벽할 것 같았던 두 가치의 하모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새누리당이 국회법 87조를 이용,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작업에 착수하면서부터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 출근길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이날 정 의장이 기자들과 만나 내뱉은 “법의 과정이 그렇게 가게 돼 있지만, 심히 유감스럽다”는 말은 그의 딜레마를 여실히 드러낸다.

국회법을 기준으로는 새누리당이 밟은 절차에 하자가 없어 개정안 상정이 불가피하지만, 의회주의 정신에는 어긋난다는 고뇌 섞인 한탄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부결 법안에 대해 의원 30명 이상이 요구할 경우 본회의에 자동 부의케 한 국회법 87조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원유철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고 신속하게 개정안을 ‘일부러’ 부결 처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반발했지만, 국회법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법을 우회적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위법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새누리당이 지난 15일 소집을 요구했던 운영위를 이날로 옮기면서 국회법 52조(위원회 개의), 58조(위원회 심사), 59조(의안의 상정 시기), 71조(준용규정, 의제상정), 77조(의사일정의 변경) 등을 모두 준수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단 5분 만에 운영위를 속전속결 하면서도 참석자들의 반론과 토론의사를 묻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오는 22일까지 자당 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제 공은 의회주의와 절차주의 사이에 선 정 의장에게 넘어왔다. 그의 선택에 따라 본회의에 부의된 개정안이 상정돼 표결에 부쳐질 수도, 서랍에서 깊은 잠을 자게 될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은 평소 절차의 준수와 여야의 합의 가장 중시해왔다”며 “그런 그에게 국회법이란 한쪽의 방패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 의장은 이날 국회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잘못된 법을 고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새누리당의 선진화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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