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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신영복 교수와 지남철
여자들은 대체로 무슨 영웅담처럼 펼치는 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나오면 건성으로 듣곤 한다. 대놓고 싫은 내색은 못하지만 속으로 남자들은 왜 꼭 군대얘기를 빠트리지 않는지 한편으론 한심해한다. 그런 여자가 엄마가 되면 달라진다. 군대에 간 아들을 둔 엄마들의 열정은 남자 못잖다.

군 생활 7개월째 접어든 아들의 첫 휴가를 잊지 못한다. 당시 창궐하던 메르스때문에 휴가 일정이 미뤄진 것이다. 당연한 조치였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는 당시 ‘21세기 흑사병’처럼 인식되던 메르스로부터 보호돼야 할 대상 중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아들의 첫 휴가를 고대하던 부모들은 부대 인터넷 사이트로 몰려가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메르스가 어느정도 잠잠해지자 군은 직접 버스로 아들들을 집으로 보내줬다. 초유의 일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딴 사람이 돼 있었다. 유격훈련으로 다져진 단단한 근육과 굳고 긴장된 모습이 낯설었지만 웃지못할 일은 군가를 수시로 불러대던 모습이다.

아들은 군가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입에서 군가를 떼지 못했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군에 가기 전 입에 달고 다녔던 노래는 가수 나얼의 ‘바람 기억’이란 노래였다.

그렇게 군 생활이 석달, 넉달 지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오던 전화는 보름에 한 번, 한달에 한 번으로 뜸해졌다.그쯤되면 안부 전화가 와도 딱이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다. 고작 물어보는게 “별일 없니?”식이다. 다 좋다고,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아들이 뒤에 꼭 붙이는 말이 있다. “근데 엄마, 자유가 없으니까.”

군대에서 자유 운운 하는 건 사실 우스운 얘기다. 그런데 그 말이 참 통절하고 새삼스럽다. 그런 아들을 달랜답시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엉뚱하게도(?) 이랬다. “얘, 근데 신영복 교수는 어떻게 20년을 감옥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 그게 일주일 전 얘기다.

출판 기자를 하면서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저자를 만나 글과 인물을 비교해 보는 일이다. 그 경험에 비춰 볼 때 글은 정말 그 사람이다. 2008년 신 교수가 ‘청구회 추억’을 냈을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를 처음 봤다. 맑고 잔잔한 모습, 소주 ‘처음처럼’ 글씨를 써 준 얘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깨동무체’로 불리는 그의 서체는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단아하고 따뜻함이 묻어있는 글씨체다. 그는 담백하게 그린 그림과 정성스럽게 쓴 글을 주위에 나눠 주는 걸 좋아했다. 그와 서울대 동기였던 한 언론인에게 주었던 서화 한 점이 기억난다.

불그스름한 별 하나와 그 밑에 검정색 펜인지 막대 같은 게 그려진 그림과 글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만일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니까”.

언론인의 역할을 지남철에 비유한 글이다. 고개가 다시금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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