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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80. 걷고 또 걷고 579km 남은 산티아고…끝이 올까?
까미노 데 산티아고 +9: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데라칼사다까지 21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한국의 지인들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시차가 있으니 그들은 일요일의 넉넉한 오후일 시간이다. 나갈 준비에 바쁘면서도 한 친구와 카톡을 하게 된다. 남미 어디쯤에서 보낸 엽서가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언니가 얼마 전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폐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크게 상심했던 친구에게 남미에서 보낸 나의 엽서가 날아갔고 그 몇 줄이 그녀의 슬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아프다. 생사를 넘나드는 커다란 슬픔이 작은 위로로 대치될 수는 없겠지만 남미에서 날아간 엽서가 친구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니 그것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허무함 또한 밀려오는 아침이다.



아름답고 쾌적했지만 밤새 시끄러웠던 나헤라에서 떠난다. 도시의 일요일 아침은 평온 그 자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일상의 게으름이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행 다니면서는 요일 개념이 없어지는 건 당연했는데 까미노에 들어와서는 날짜 개념도 없어졌다. 산티아고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그저 걸을 뿐이다. 마치 그것이 본래 지고 있었던 일생일대의 의무 같다.

눈과 비를 동반하던 하늘과 젖어서 냇물이던 길들이 지난 며칠 동안의 화창한 날씨에 보송보송 마른다. 내리쬐는 햇빛은 하루가 다르게 강렬해진다. 서쪽을 향해 걸으니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걷는다. 아침이면 그림자로 뭉뚱그려진 실루엣 속의 나를 내가 들여다보며 걷는다.



지역이 달라지니까 까미노 표지도 달라진다. 표지석이 아니라 말뚝을 세워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도 표시해 준다. 산티아고까지 582km 남았다는 표지다. 그런데 이 표지는 좀 얄궂다. 

너무나 친절하게도 1km마다 말뚝을 세워 놓은 것이다. 힘들여 걸었는데 얼마나 왔나 확인해 보면 겨우 1km 전진했다고 하니, 나중에는 자세히 보지도 않게 된다. 자동차 도로에는 파랑과 노랑이 선명한 커다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곳곳의 까미노 표지는 까미노를 향하는 길을 안내해줌과 동시에 순례의 목적지가 산티아고임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한다.

론세스바예스에서 790km 표지를 보고 왔으니 대략 200km쯤 걸은 것 같다. 해발 950m 정도의 론세스바예스로부터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며 많이 내려온 상태다. 오늘은 해발 500m인 나헤라(Najera)로부터 해발 700m쯤 되는 시루에냐(Ciruena)를 지나 해발 600m의 산토도밍고데라칼사라(Santo Domingo de la Calzada)라는 긴 이름의 마을로 간다.


걷다가 만나는 첫 마을에서 까미노 첫날처럼 데사유노(Desauno : 아침식사)를 먹는다. 진과 나는 초리소를 넣은 보카디요로 요기를 한다. 입맛에 맞는 맛은 아니지만 먹을 만은 하고 사실 그냥 먹어보는 재미도 있는데 케이는 영 마땅치 않은 눈치다. 

케이는 아침으로 보카디요는 도저히 못 먹겠다며 까페솔로(Cafe Solo : 에스프레소)만 한 모금 들이킨다. 바(Bar)는 잠시라도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를 쉬며 요기도 하고 화장실도 들르는 일석사조쯤 되는 역할을 해서 다리라도 쉬어 갈 수 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이지만, 걷다가 멈추면 그날의 길도 끝난다. 가지 않은 길은 아직은 내 길이 아니다. 575km를 더 걸으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수 있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지금으로선 그저 묵묵히 걸을 뿐 머나먼 그날이 오기나 할까 싶다.

아침 친구와의 카톡 때문에 걷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걷는 내내 내 인생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생사의 길목이란 늘 그렇게 주위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걸어야 멈추게 되고 살아야 죽게도 된다고, 어제 어떤 추모비 앞에서 떠오른 말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나는 지금 멈추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일까?



한때는 곁에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던 사람도 멀어져 소식도 모르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괜히 토닥거리던 어릴 적 친구와 동기간 같은 우정이 지속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부모형제는 어차피 가족이라는 울타리, 혈연관계로 맺어진 것이니 각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친구라는 관계는 다르다. 

지속해야 할 책임이나 구속력을 가진 관계도 아닌데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늘 거기 있어 주어서 미처 몰랐었다. 나이를 초월해서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연들은 모두 소중한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걷고 있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지구 저편에 있다는 것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고마움도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내린 비에 젖은 땅이 사람들의 발자국에 울퉁불퉁해지고 느닷없는 햇살에 그대로 굳어져 걷기 힘든 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길을 계속 지나갈 것이고, 그 발자국들이 모여 땅을 편평하게 할 날도 올 것이다. 또 비가 다시 한 번 내리면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가 내려도 재앙이 아니고 날씨가 화창한 게 행운도 아니다. 생물에게는 적절한 비와 햇빛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계속 앞으로 내딛고 있는 두 발의 규칙적인 움직임과 눈앞의 바뀌는 풍경,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성큼 흘러가 있다. 

여러 생각에 정신없이 걷다가 마을에 들어온 김에 눈에 보이는 바(Bar)로 다시 들어간다. 여태까지 걷다가 들어간 곳 중 가장 크고 현대적인 곳이다. 케이는 늘 마시던 까페솔로, 나는 까페콘레체를 마신다. 걸은지 며칠 안 되는 진과 랄스는 다리가 많아 아픈지 아예 뒤쳐진다.



차가 다니는 길 옆을 걷는 것은 지루하다. 도로에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야 매일 보던 풍경이니 관심도 없다. 현대의 순례자들에게는 자동차가 복병인 셈이다. 어쩔 수없이 차도를 건너야만 하는 상황도 있다. 긴 지팡이에 호리병을 달고 걷는 순례자와 가리비 모양의 까미노 표식 조형물이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며 걷자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게 뭐라고 위안이 된다. 까미노에 들어온 지 열흘도 안됐는데 다른 세상 사람이 된 기분이다. 


드디어 산토도밍고데라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들어온다. 배낭과 지팡이, 가리비와 호리병, 그리고 신발 한 짝과 자전거…. 순례자의 상징물이 반기고 있다. 이것은 호리병의 입구가 수도꼭지인 수도시설이다. 여유 있게 출발해서 어렵지 않게 21km를 걸으니 산토도밍고에 도착한 시각은 겨우 1시 30분이다. 한 마을 정도 더 걸을까 하다가 이곳에서 멈추기로 약속했던 진이 걱정되어 알베르게에 들어가 먼저 등록을 마친다. 


한 시간쯤 후에 랄스와 함께 도착한 진은 오는 길에 이안 할아버지에게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가 특이하다고 들었다며 조금 더 걷는다고 한다. 이미 알베르게에 짐을 푼 케이와 나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고 그렇게 진과 랄스는 그렇게 떠난다.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가 좋다고 진에게 소개해 준 이안은 무슨 이유에 선지 이곳 산토도밍고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렇게 저렇게 까미노에서의 인연들이 교차된다. 걷다 보면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진을 위한답시고 걸음을 멈춘 케이와 내가 서먹서먹한 것은 사실이다. 오지랖이 너무 넓었나 보다.


일찍 발걸음을 멈춰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리오하 지방의 콤포스텔라라고 불리는 이곳 산토도밍고의 유적을 돌아본다. 이 마을의 긴 지명 산토도밍고데라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중에서 “도밍고 데 라 칼사다(Domingo de la Calzada)”는 사람의 이름이다. 

수도원에 입회하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뒤 이곳에 정착해서 까미노와 다리를 만들고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설립하는 등 까미노의 큰 후원자가 되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묘역 위에 대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이름이 마을의 이름이 된 이야기다.



교수형 직전 도밍고 성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젊은이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영주에게 식탁 위의 닭이 홰를 쳤다는 전설로 유명한 이 도시의 대성당에는 실내에 닭 두 마리의 벽감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작은 성당이 열려있기에 문을 밀고 들어가 본다. 시에스타 시간인 오후, 등산복 차림의 순례자 두 명만이 작은 성당에 앉아 있다. 남미에서도 크고 작은 성당에 갔었고 마드리드에서도 톨레도 대성당에도 다녀왔지만 장식도 변변하지 않은 이 소박한 성당에서 더욱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자전거도 보관해주는 큰 알베르게여서 자전거 순례자들도 묵어가지만 역시 순례철이 아니라서 묵는 인원이 적은 관계로 달랑 방 하나만 문을 열어준다. 3층의 비스듬한 천장이 그대로 드러나는 도미토리에 일찍 도착해서 이층 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를 먼저 차지했다. 

이층 침대의 위층은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이 있고 아래층은 이층의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지는 불편함이 있는데, 오늘 밤은 그나마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

첫날 만난 영국 여인 케이트도 여기서 다시 만나고 이안 할아버지, 자전거로 순례 중인 일본 대학생 3명에, 캐나다 영국 노부부 4명, 처음 보는 자전거 순례자들까지 같은 방에서 잔다. 

제법 사람이 많아 답답한 느낌이 들 정도다. 함께 걷든지 스쳐 지나가든지 어쨌든 사람이 걷는 길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생길에서도 까미노에서도 결코 혼자서 갈 수는 없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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