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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의 재구성] ‘19년전 그날’ 이태원 살인의 진실 밝혀질까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우리의 행복은 1997년 4월 3일 그 사건 이후 끝났습니다”

19년 전 ‘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이복수(74) 씨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분명했습니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열린 ‘이태원 살인사건’ 11차 공판에서 이씨는 피고인 아더 패터슨(37)이 옆에서 보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진술을 마쳤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간 재판 때마다 방청석을 지켜온 이씨는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는 패터슨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도 토해냈습니다. 


이씨의 행복을 앗아간 ‘그 사건’은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했습니다.

여자친구와 햄버거 가게를 찾은 고(故) 조중필 씨는 잠시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고, 이 모습을 본 패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당시 18세)도 조씨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조씨는 피를 흘리며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조씨의 목과 가슴 등엔 여러 차례 흉기에 찔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22살의 대학생이었던 조씨는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건 발생 23일 만에 서울중앙지검은 에드워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합니다. 패터슨은 증거인멸죄 등으로 구속기소됐습니다.

1998년 1월 서울고등법원이 에드워드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에드워드를 진범으로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9월 대법원은 에드워드에게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에드워드가 죽였다’고 주장한 패터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때부터 이태원 살인사건은 ‘죽은 사람은 있으나 죽인 사람은 없는 이상한 사건’이 됐습니다.

그 사이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패터슨은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습니다.

실망스러운 판결을 받아든 조씨 가족은 “에드워드가 아니면 패터슨이 범인”이라며 패터슨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번 황당한 일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1년 넘게 검찰 조사가 지연되는 사이 패터슨이 돌연 미국으로 도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인사이동에 정신이 팔려 있던 검찰은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연장 조치를 하는 것도 잊어버려 결과적으로 유력한 용의자를 스스로 놓아준 꼴이 됐습니다.

그렇게 이태원 살인사건은 영원히 ‘범인 없는 사건’으로 남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9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잊혀져 가던 사건에 다시 한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법무부는 미국 법무부와 공조해 패터슨의 소재를 확인하고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습니다.

패터슨은 한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 법원에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며 결국 지난해 9월 23일 새벽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 18년 만이었습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패터슨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충격”이라며 “나는 죽이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때와 여전히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18년전 공소장에 적혀 있던 에드워드의 이름을 지우고 패터슨의 이름을 적어 재판에 넘겼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져온 패터슨에 대한 재판은 이제 15일 결심공판으로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이날 공판에선 검찰의 최종 의견 진술과 패터슨 본인의 최후진술이 이뤄진 뒤 검찰의 구형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선고는 이르면 이달 말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는 피해자 진술에서 “진실을 밝혀 꼭 엄벌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당부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19년 전 그 사건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가 이제는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요?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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