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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박용근 KAIST교수]이해 관계 충돌
이해 관계 충돌(Conflict of Interest), 줄여서 ‘COI’라는 단어를 미국과 유럽에서는 꽤 많이 사용한다. 학계 뿐 아니라 사업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고 조정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극히 드물게 쓰이다 보니 제대로 된 번역이나 설명조차 찾기 어렵다.

COI의 사전적 정의는 ‘개인이나 조직이 여러 이해 관계에 얽혀 있을 때, 각 이해 관계 간에 상충이 발행해 부정직하거나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미국에선 공직자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학계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COI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은 거부해야 하고,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공개해서 투명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예컨대 채용 담당자가 입사 지원서를 심사하면서 가까운 친척이 지원한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보고를 해서 본인의 결정이 채용 과정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빠져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 직무에서 오는 책임과, 친척이 잘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오는 두 가지 이해 관계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만일 심사 요청을 받았는데 지원자가 나와 가까운 사이라서 잘 봐줄 수 있다거나, 경쟁 관계라서 나쁘게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COI를 이유로 심사를 거절해야 한다. 공적인 업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두 COI에 반하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선거 기간 동안 정치 후원금 내용을 공개토록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COI란 이렇듯 우리 사회에 늘 존재하는 개념이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공직자나 기업가, 더 크게는 사회 전반에 비윤리적 일들이 만연하다. 국회 청문회에서 불미스런 과거 없이 통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보니 이제는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 등의 문제는 다 같이 덮어주는 듯한 분위기다.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 논란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에 있는 국회의원, 기업가, 교수 등이 공정하고 윤리적인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믿지 못하게 된다. 또 사리사욕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불신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기관에서 조사된 통계들을 보면 우리나라 국가 기관이나 사회 지도층의 청렴도, 신뢰도는 10~30%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회 지도층의 낮은 윤리 수준과 국민들의 낮은 신뢰도는 곧바로 국가 경쟁력 하락과 큰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지도층이 부패했다고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다 보니, 사회적ㆍ정치적으로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 북유럽 등 선진국도 처음부터 지도층이 윤리적이고 청렴하진 않았고,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했던 것도 아니다. 인간 본연의 욕심은 보편적인 것이고, 사리사욕을 위해 비윤리적인 선택이나 위법을 범하는 사례는 어느 국가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높은 신뢰 수준을 가진 국가들은 과거 사례에서 배우고 개선해 제도의 틀 속에서 문화로 만들어낸 것이다. COI가 대표적이다. 사회 지도층이나 의사 결정자 개인의 성품에 맡겨서는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제도를 통해 비윤리적 결정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신뢰가 사회 통념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거나 부당한 편의를 주는 것이 분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워런 버핏이 말했던 ‘법의 테두리보다 훨씬 안쪽 경계선에서 행동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와 신뢰의 문화 없이는 대한민국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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