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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 기자의 일본 X파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죠”…재일 한국인이 본 위안부 합의와 역사문제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불가역적이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전 ‘부리 카에사즈(ぶり返さず)’란 표현이 신경쓰였어요. ‘아, 위안부 문제는 이걸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오사카 출신 재일 한국인 김모 (여ㆍ32)씨의 말이었습니다.

‘부리카에사즈(ぶり返さず)’는 ‘가라앉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다’는 의미의 ‘부리카에스(ぶり返す)’의 사역동사 부정형으로, ‘다시 문제화시키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지난해 12월 28일 이뤄진 위안부 합의를 두고 이 표현을 줄곧 사용했습니다. 

[자료=헤럴드경제DB]

일본 언론은 왜 ‘불가역적 합의’를 설명하기 위해 ‘부리카에사즈’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일반적으로 부리카에사즈에는 문제 자체를 다시 거론하거나 관계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함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씨는 위안부 타결 보도를 보며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2년 전 한국으로 와 통역일을 하고 있다는 김 씨는 부모님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았다고 합니다. 일본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또, 일본 외무성이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사과와 배상이 이뤄진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법적 책임과 강제연행에 대한 해석 문제가 있다는 게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운 적이 없거든요.”

재일 한국인인 그녀가 바라본 위안부 합의는 결국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녀는 “일본 내각대신총리로서 사과를 얻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좀 더 거창한 뭔가를 원해서 저러는구나 했어요. 총리가 여러 번 사과 편지도 쓰고, 보상도 했으니까요. 매번 일본 역사교과서 가지고도 문제삼길래 그것도 다뤄질 줄 알았어요.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고요. 소녀상 철거문제 빼곤.”

일본 내 위안부 문제 인식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불가역적인 단어를 쓰고 부리 카에사즈라는 단어는 쓴 순간부터 일본 사람들은 ‘이제 거론되지 않을 문제구나’하고 인식했어요. 저희 가족도 ‘아, 이제 위안부 문제가 일본 언론에 언급될 일은 없겠구나’하고 생각했죠. 언론들의 논조 자체가 사과보다는 ‘다시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데에 집중했거든요.”

위안부에 대한 한일 인식 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김 씨는 역사교육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오사카는 하시모토 도오루(橋下 徹) 오사카 전 시장을 필두로 극우정당인 유신회가 활개를 친 곳입니다. 또, 극우매체인 산케이(産經) 미디어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케이의 주요 후원처는 극우 재력가와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문제가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오사카에서는 교장이 나서서 ‘일본은 자학사관에 빠져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역사 논란이 된 후쇼사 교과서는 ‘중립적인’ 입장이라고 말해요.”

현재 일본의 전쟁 역사를 미화하는 지유샤(自由社)와 이쿠호샤(育鵬社ㆍ후소샤(扶桑社)의 자회사)의 중등역사교과서 채택률은 6.2%에 달합니다. 지난해에 비해 1.5배 증가한 수치지만 보수매체인 산케이(産經)신문은 “90% 이상의 중학생이 잘못된 자학적 역사관을 배우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사카 다수의 중학교는 이쿠호샤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0년 뒤, 20년 뒤 일본은 위안부 역사를 어떻게 다룰까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는 개헌을 위해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와 연대할 의사가 있다고 10일 NHK 방송을 통해 밝혔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해 평화헌법이라 일컬어지는 헌법 9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시모토가 이끌었던 구 유신회는 당 공약으로 헌법 9조 폐지와 일본제국 재건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아베와 하시모토가 손을 잡았을 때, 일본의 역사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참고로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은 지난 2013년 위안부 소녀상 설립 예정이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며 “총탄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정신적으로 고양된 맹자(猛者) 집단에 휴식을 제공하려면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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