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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죽어야만 보험금 받는 질병...왜?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40대 남성 A씨는 최근 불면 증세에 병원을 찾았다. A씨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적응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 본격적인 치료를 준비하던 A씨는 병원비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민간보험회사에서 치료비를 보상하는 실비보험 적용 대상에서 정신과 치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제 소비량은 OECD 기준 꼴찌다. 자살로 인한 사망에는 사망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우울증 치료비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회사들의 약관들을 살펴보면 일명 ‘F코드’로 분류되는 정신과질환 및 행동장애 진료비는 실비보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직 보험설계사 최모씨는 그 이유에 대해 “우울증으로 인한 자해,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통 등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보험회사는 정신과 진료를 실비보험 적용 대상에서 빼는 것에 더해 과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을 거절하기까지 한다. 보험회사 측은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며 법적 근거로 상법 732조를 들이민다.

상법 732조는 “심신 미약자와 심신 빈약자의 생명보험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적고 있다.

이에 환자들은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지 않도록 비보험진료를 선택하면서 비용을 부담한다. 혹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신건강의학과 대신 가정의학과나 신경외과 등을 택하기도 한다.

보험회사들이 이처럼 정신과 진료비 청구에 인색한 상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지적받기도 했다. 인권위는 2011년 ‘장애유형별 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연구’를 통해 “국내의 경우 정신질환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최대한 보험 가입에 부정적이고 엄격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013년 4월 가벼운 정신과 외래 상담만 받는 경우를 고려한 ‘Z코드’를 도입했다. 정신과에 방문해 상담만 받고 돌아가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약물을 처방받는 순간 ‘F코드’가 돼 버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대인에게 정신질환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가벼운 약물 처방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자살률이 높아 정신건강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면서 정작 치료에는 소극적으로 만드는 지금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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