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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타결 그후] 군함도 그리고 위안부…‘미봉책’으로 일관해온 일본
‘군함도’ 강제징용 사실 명시하겠다던 일본, 세계유산 등재 후 ‘모르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도 강제성에 물타기…야스쿠니 신사 참배 까지



[헤럴드경제(일본 나가사키)=박세환 기자] 올 한해도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이 계속 되면서 또다시 우리 국민들을 울분케 하고 있다.

한해를 마감해가는 지난 22일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놓고 핫 이슈로 떠올랐던 ‘군함도’ 일본 하시마(端島) 탐방길에 올랐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을 달리자 회색빛 폐건물로 가득한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콘트리트로 뒤덮인 길이 480m, 폭 150m의 잿빛 군함도. 이름 그대로 바다 한 가운데 거대 군함이 떠 있는 듯했다. 섬이라곤 하지만 마치 높은 콘크리트 장벽에 갇힌 수용소 같다는 생각에 이곳이 왜 ‘지옥섬’으로 불렸는지 가늠케 했다. 배가 섬에 다가갈수록 마음이 먹먹해지고 답답하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 강제로 끌려온 것도 서러운데 콘크리트 인공섬 지하 1000m 해저 막장에서 깻묵밥 한덩이에 1년 365일 강제노역에 시달렸을 한국 강제 징용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시마는 강제 징용 등 많은 논란 속에 지난 7월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한국은 강제 징용이 이뤄진 하시마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일본 정부가 강제 징용을 의미하는 설명 문구(forced to work)를 추가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전제로 하시마의 유네스코 등록이 결정됐다.

그러나 일본은 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후 입장을 바꿨다.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광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실제로 우리가 찾은 하시마에는 강제징용 사실을 명시한 자료집이나 안내 방송은 없었다. 자원봉사로 하시마 안내를 맡은 일본인 해설사들 중 대다수는 한국인의 강제 징용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혹 아는 해설사도 “이곳에 있던 수십명의 조선인들이 월급을 받고 일한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이 살았던 지역은 복원공사 중이라는 핑계로 출입을 막았다.

40여분 진행된 하시마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한국 강제 징용자들의 숙소로 추정되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가장 파도가 높아 수시로 바닷물이 들이치는 곳이었다. 한국인 징용자들이 힘든 막장 노동 이후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열악한 곳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한국ㆍ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에 합의했다는 것. 그러나 하시마에서 느낀 배신감이 여전히 이어졌다. 일본 보수언론ㆍ우익세력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에 대한 물타기에 나선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에서는 당시(전쟁 때) 매춘이 합법적으로 인정됐고 공적으로 관리하는 ‘공창제도’도 존재했다”며 “위안부제도는 그런 공창제도를 전쟁터로 들여놓은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하시모토 도루 전 일본 오사카 시장은 “군의 관여라는 문언이 들어갔어도 그것이 강제연행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라며 “‘군의 관여’에 관해 반성과 사죄한다면 세계 각국도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군이 관여한 전장(戰場)과 성(性)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는 군 위안부 문제 합의 직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서 이번 합의가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은 계속되고 있다. 자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 주변국에 손을 내밀어 화해와 용서를 취하다가도 결국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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