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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디찬 금속을 용접하며 인간의 따스한 면들을 이어주다, 조각가 정기웅 작가

금속은 차가운 속성이지만, 그것을 조형하는 데는 엄청난 열기나 압력을 거쳐야 한다. 조각가 정기웅 작가는 이 금속의 양면성에 따뜻한 숨결을 넣은 예술가다. 더욱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동적인 요소와 정적인 요소의 결합, 부드러움과 거칠음의 조합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다. 또한 투박하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실험적인 괴기스러움을 시도했음에도 인간의 친근한 면을 작품의 주 소재로 삼은 덕분에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사람 냄새’가 나는 용접이라는 평가를 꾸준히 받아왔다.

정 작가의 시도는 체력과 정신이 동시에 마모될 만큼 고된 것이었다. “철은 아크용접, 동은 산소용접을 한다. 또 동은 용접을 하면 퍼지고 주변과 달라붙는 적동과 열을 가하면 뚝뚝 끊어지는 황동으로 나뉜다. 동판을 잡는 순간 주조과정의 순간적인 타이밍을 잘 잡아 형태를 만들어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런 동의 용접방법을 몰라 물성에 적응하는데 고생이 많았다. 독창적이라고 평가받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질감 역시 물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국전 특선을 하고, 4대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작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커졌기에 꾸준히 창작을 할 수 있었다”


정 작가는 물성에 대한 도전만큼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그래서 단독 인물도 많지만 그의 열린 생각만큼이나 모여 있는 인간군상이 더 많다. 닥종이 인형처럼 단순하지만 감정이 들어있는 둥근 얼굴에서는 따스함을, 반대로 길고 섬세하게 표현된 손발에서 강한 역동성을 읽을 수도 있다. 때때로 의도치 않은 무거운 아픔이 나타날 때도 있는데, 그것은 6.25동란으로 실향민이 된 부모님 아래 자라나 광주에서 5.18을 겪은 작가의 성장과정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감과 포근함이 주요한 정서인 까닭은 나이를 먹을수록 사소한 것들에 긍정하고 감사하며, 인간의 본질을 감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정 작가의 고백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유난히 얼굴을 강조한 <못난이>시리즈에서도, 반대로 몸 선을 강조해 여성스러운 교감과 우아한 몸짓이 담긴 <동행>에서도, 모든 인물들에게 대화와 표정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물성과 감성의 조화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생각을 구상적으로 풀어나간다”고 간결하게 정의하는 정 작가에게서 물성에 대한 관심만큼 뚜렷한 주관도 엿볼 수 있다.

그는 금속분야 예술에서 순수예술보다 공공조형물을 만들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작가로서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공존을 꾀할 때, 그리고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을 잘 안다. 나의 경우는 작품의 희소가치와 일일이 용접해 만드는 노력을 강조하며 현실을 타개해 왔다” 

정 작가가 용접해서 연결한 것들은 동 뿐만이 아니다. 그의 그런 뚝심은 해외 갤러리에서도 인정받아, 베이징아트페어에 찾아온 경매 전문가가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상하이아트페어까지 다시 찾아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기억을 편안하게 기록하듯이 작업하자고 결심한 때부터, 작품에서 코믹함, 인간미, 허를 찌르는 역발상이 잘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반응이 관객에게도 더 잘 전해지게 됐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뤄낸 긍정적인 성과는 작품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교감, 재료에 대한 꾸준한 소통을 해 온 작가가 누려 마땅한 값진 결과라고,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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