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영상의 재계Today]‘신격호 연출 논란’…왜 하필 바둑일까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9일 갑자기 재계의 시선이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두 아들 사이에서 경영권 내홍을 겪고 있는 그에게 눈길이 쏠린 것입니다. 이유는 롯데 경영권 문제는 아닙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4일 롯데호텔 34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조치훈 9단과 바둑을 뒀다고 합니다. 롯데 분쟁 쟁점과 향방을 가를 중요한 포인트가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인데, 프로바둑 기사, 그것도 한때 일본은 물론 천하를 호령했던 조치훈과 대국을 펼쳤다고 하니 관심이 갈 수 밖에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신조로 휠체어를 타고 일본 최고수를 격파했던 조치훈의 한때 모습은 국내 바둑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죠. 이런 조치훈과 ‘반상의 대화’를 나눴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신 총괄회장의 총기엔 문제가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재계에선 ‘연출 논란’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신 총괄회장이 조치훈 9단과 바둑을 둔 사실과 세세한 대화까지 공개됐는데 이는 롯데 경영권 분쟁 당사자이자 신 총괄회장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이 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SDJ코퍼레이션 회장을 맡고 있으며, SDJ코퍼레이션 측은 이같은 조치훈과의 반상 대국 자료를 공개한 것입니다.

이를 소개한 일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조 9단과 담소를 나누며 바둑을 뒀고 ”현재 바둑 랭킹 1위가 누구냐“고까지 물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오너가에서 최고어른이 프로기사와 바둑을 뒀다는 사실, 이런 것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오너 중 수많은 바둑 마니아가 있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미에 국한된 것으로 오히려 비밀에 부치면 부쳤지, 세상에 드러냈던 일은 아닙니다. 여태까지 재계는 그래왔습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SDJ코퍼레이션 측이 신 총괄회장과 조치훈의 바둑 두는 사진까지 언론에 내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소개한 것은 그래서 약간 의심의 눈초리가 뒤따릅니다. 한마디로 홍보성 이벤트라는 것이죠. 일각에선 아버지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데, 그런 아버지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고, 그래서 경영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신 전 부회장의 은근한 홍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비약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홍보성 이벤트든, 아니든, 신 총괄회장이 조치훈을 만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조치훈 9단은 어렸을때부터 신 총괄회장의 든든한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의 인연은 5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신 총괄회장으로선 바둑 영재를 만나는 기쁨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강산이 다섯번 바뀌는’ 동안이나 만난 인연이 있으니 조치훈 9단이 한국에 오면 당연히 신 총괄회장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둘이 만나면 또 당연히 수담이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를 낸 것은 뭔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 총괄회장 얘기를 잠시 떠나, 바둑 얘기를 해 볼까요?

신 총괄회장 처럼 바둑을 좋아하는 경영자는 많습니다. 범LG가(家) 경영자들이 특히 바둑을 좋아합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각각 아마추어 중에선 고수로 통합니다.

구본무 LG 회장

저가 아는 프로바둑기사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어느날 구본무 회장한테 전화가 왔답니다. 구 회장은 직접 “일본에서 사업상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그 손님이 당신 얘기를 하더라. 일본에서 만났었는데 다시 한번 만나 바둑을 두고 싶다고 하더라. 방문해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답니다. 대기업 회장이 직접 전화도 주고 해서 갔는데, 정말 일본에서 만났었던 기업인이 와 있었고, 그 사람과 바둑 몇판을 뒀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구본무 회장이 뒷짐을 진채 정말 열심히 대국판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중간 중간 업무상 자리를 떴다가는 몇번이고 다시 돌아와서는 훈수까지 두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진지했답니다. 그 프로기사는 “구본무 회장이 정말 바둑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프로바둑기사에게 “거마비 받았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웃기만 했습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바둑 아마 7단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역시 바둑 얘기를 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허 회장은 2001년부터 13년간 한국기원 이사장을 맡아 바둑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사실상 명예 뿐인 한국기원 이사장을 10년 이상 맡아 한국 바둑계에 대한 책임감을 놓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바둑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GS칼텍스배가 여전히 유명한 대회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허 이사장이 한국기원에 사재 많이 내놨느냐”라고 묻자, 그 역시 웃기만 했습니다.

구자홍 전 LS 회장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은 “바둑은 흑백의 조화로 무한한 세계를 창조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겐 바둑은 경영이자 도전이라고 합니다. 구 전 회장은 지난 2000년 한국기원으로부터 아마 6단을 공인받은 숨은 고수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에 ‘바둑 사랑’이라는 코너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마니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범LG가가 아니라도 바둑 좋아하는 오너는 정말 많습니다. 따로 소개할 기회가 되면 하겠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최고경영자(CEO)는 왜 바둑을 좋아할까요? 정말 난해한 질문입니다. 이 답을 안다면 기자가 경영자가 됐겠지요. 여러 시각이 있습니다.

바둑과 경영에 큰 지식이 없는 제가 두루뭉술하게지만 얻은 결론은 바둑과 경영은 정말 닮았다는 겁니다. 치열한 전투(글로벌 경쟁), 전투에 임하기 전 반상(세계)을 향한 포석, 때론 작은 것을 죽이고 큰 것을 살리는 용병술(미래전략)등등….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쉴때에도 전략과 용병술을 고민해야 하는 경영자들은 그래서 취미를 바둑으로 삼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길어졌습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조치훈과 바둑을 뒀다는 말에 여러가지 든 생각을 그냥 글로 써봤습니다. 신 총괄회장도 한때 바둑을 두며 경영 구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셔서 지금도 바둑에서 총기를 얻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ys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