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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농구장 풍경
최근 10여 년 만에 프로농구 경기를 보기 위해 한 농구장을 찾았다. 프로 출범 초창기와 같은 뜨거운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열심히 코트를 누볐고, 치어리더들은 화려한 율동으로 홈팬들과 함께 어울렸다. 필자 역시 선수들이 덩크슛을 터뜨릴 때마다 환호했고,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을 때는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2시간여를 재미있게 보냈다.

그런데 한 가지 찜찜했던 기분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경기 시작 전 국가(國歌) 연주 및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는 시간에 일부 관중이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다. 국가가 연주되면 으레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국가를 들으며 국기를 향해 예를 갖추어야 함에도, 이들은 이를 무시해버렸다. 계속 앉아서 휴대폰을 보거나, 계속해서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누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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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연주되면 국기에 대해 예를 갖춰야 한다. 출처=2015광주유니버시아드 홈페이지


순간 지난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행한 시정연설 장면이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날 때 야당의 조경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다른 야당 의원들이 정치적 항의의 표시로 시종 앉아 있거나 박 대통령의 연설 도중 퇴장했던 태도와는 대조적이었다. 조 의원은 “행정부의 수반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이 연설하는 도중 퇴장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지 않은 의원들은 무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 의원의 말에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불호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대통령 박근혜를 싫어하는 것과 대통령 그 자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이 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경로사상’ 때문이다. 설령 그 사람이 꼴도 보기 싫은 어른이라 해도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경기장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우리가 국기를 향해 일어서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에 예를 갖추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경기장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향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은 상식이다.
혹자는 경기장에서까지 국가가 연주되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과 경기장에서 국가가 연주되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경기장에서의 국가 연주는 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국가가 연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연주 시 일어나서 예를 갖추지 않으면 감시요원에게 잡혀가기도 했다. 이어 프로 경기장에서도 국가가 연주되었다. KBL(프로농구연맹)은 아예 국가가 연주될 때 선수들은 하던 행동을 중지하고 도열해야 한다는 규약을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한 외국인 선수는 국가 연주 때 스트레칭을 하다가 구단에서 퇴출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관계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그 자체와 국가 연주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극장에서의 국가 연주는 별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경기장에서의 국가 연주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야구와 국가 연주, 농구와 국가 연주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KBO(한국야구위원회)와 KBL에 묻고 싶다.

프로스포츠도 하나의 오락이다. 오락하면서 국가 연주를 들으며 국기에 예를 표한다? 어울리는가? 연예인들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각종 콘서트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경기장에서의 국가 연주가 일반화되어 있는데 뭐 그리 큰 문제가 되느냐고 말이다. 사실, 미국의 일부 종목에서는 경기 전에 국가가 연주되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들이 관중들과 함께 기도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일명,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전쟁 통에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군을 적극 지지하고 성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연주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사도 온통 전쟁과 관련된 용어로 가득 차 있다. ‘세계 경찰국가’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국가는 군인들과 함께 장엄하게 연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는 다르다. ‘애국가’는 우리나라의 기원(起源)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가 연주되면 우리는 장소와 관계없이 일단은 예를 갖추어야 한다. 국가와 정부를 착각하지 말고 말이다. 다만, 국가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연주되어야 한다. 국가대항전도 아닌 경기장에서의 국가 연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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