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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외국인 국립미술관장이 뭐가 어때서…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만약에….

국내 미술계 인사가 런던 테이트모던, 혹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관장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마치 월드컵에 나간 국가대표 축구단의 우승 소식이 전해진 것 마냥 국위선양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가득할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 반대의 경우가 현실화했다. 유일무이한 국립 미술관 관장 자리에 예상대로 외국인이 앉게 됐다.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전(前)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이다. 


지난해 10월 정형민 전 관장 직위 해제 이후 무려 14달동안 공석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관장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다. 2000년 개방형 직위 공무제 도입 이후 정부 부처에 외국인이 임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정부 부처 국장급 자리인 국현 관장 자리에 외국인 마리가 오는 것을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먼저 반대 쪽 여론을 보자.

국현 관장 자리에 외국인이 오는 것을 반대하는 쪽도 있었고, 그 외국인이 마리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쪽도 있었다.

전자는 국립미술관에 외국인 관장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그 말 맞다.

우리나라 뮤지엄 역사는 일천하다. 두산 백과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미술관은 1908년 지어진 이왕가박물관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왕실 소장품 등으로 창경궁에 꾸려 놓은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최초 개관했다.

박물관을 시초로 보면 불과 100년 남짓, 미술관으로 보면 반세기가 채 안 되는 역사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미술관이 이미 18세기 초반에 토대를 닦은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뮤지엄 역사가 이토록 일천하니 국내 사정을 잘 아는 국내 미술계 인사가 조금 더 터를 닦고, 그 이후에 외국인 관장이 들어와도 늦지 않다는 논리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마리의 전적을 문제 삼았다.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재직 당시 스페인 군주제를 풍자하는 작품을 빼려 했다가 아예 전시를 취소했고, 반발이 일자 다시 전시를 재개한 후 본인은 사표를 던지고 동시에 큐레이터 2명을 보복성 해고했다는 내용이다. 세계현대미술관협의회(CIMAM) 회장을 맡을 정도로 미술계에서 전시 기획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검열 이슈로 일생일대의 오점을 남겼다.

정치 검열에 굴복했다는 것은 미술인으로써 당연히 지탄받을 일이니 이 또한 일리가 있다.

찬성 쪽 여론을 보자.

서울대니 홍대니 학연을 둘러싸고 파벌싸움이나 벌이는 방만한 미술계에 차라리 히딩크처럼 학연, 지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을 들여오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정 전 관장이 제자, 지인을 국현 학예사로 채용하기 위해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했으니, 이런 말 나올 법 하다.

특히 1차 관장 공모 과정에서 홍대 출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두고 학맥인사니 ‘괄목홍대’니 잡음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 쪽 주장 충분히 납득이 간다.

결론은 반대하는 쪽이나 찬성하는 쪽이나 다 맞다. 그리고 다 틀렸다.

첫째, 국내 뮤지엄 역사가 일천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미술계 인사들은 ‘포스트 뮤지엄’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한쪽에선 뮤지엄을 둘러싼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만사(萬事)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미 자의반 타의반으로 글로벌 도시가 돼 버린 서울에서 일천한 뮤지엄 역사만 운운해서는 서구 명문 뮤지엄을 따라갈 수가 없다.

둘째, 미술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정치 검열에 굴복하는 것 만큼 굴욕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마리가 아닌 다른 누구라면, 외국인이 아닌 국내 미술계 인사라면, 과연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근한 예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이 전시 중간에 내려진 사건이 있었다. (어줍잖은 아트페어 타이틀을 내걸었던) 전시의 감독은 물론, 미술관 관장도 작가를 못 지켰다.

게다가 마리의 검열 사건과 관련 유럽 미술계 인사들 중에서는 마리가 스스로 작품을 검열한 것이 아니라 마리 또한 미술관 외부로부터 검열 압박을 받은 피해자였다고 두둔하는 측도 있다.

셋째, 외국인 관장이 온다고 파벌 싸움이 종식될까. 장담컨대 단기에 해결되기 힘들다. 사진계, 건축계를 포함, 미술계 전반, 아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가 혈연, 지연, 학연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게 대한민국이다. 외국인 수장 한 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임 관장은 이르면 14일 임명장을 받고 관장직을 시작한다. 임기는 2018년까지 3년이다.

미술과 같은 문화예술 분야는 단시간에 스코어를 내는 스포츠 게임과는 다르다. 그래서 미술관 관람객 숫자라던지, 작품 값이 얼마나 올랐다던지 하는 것만으로 섣부르게 성과를 판단할 수 없다.

‘미술계의 히딩크’가 왔다고 국현이 갑자기 테이트모던이 될 리도, 구겐하임이 될 리도 만무하다. 마리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공(功)은 없고 과(過)만 잔뜩 남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 좋다. 14개월 간 석연치 않은 공모 과정을 끌어 온 탓에 인사를 주도한 정부 부처를 곱게 보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국현 관장이 이전과는 다른, 그것이 아주 미미할지라도, 조금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기대해야 한다. 그 편이 더 남는 장사다.

어차피 국립 미술관은, 관장 것도, 작가들 것도 아닌, 티켓 값을 지불하고 직접 발품을 들여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것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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