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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남한에서 다시 피운 평양의 문배향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지난 11월 19일 경기도 김포시 서암리의 문배주 양조장.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 외의 현대식 커다란 기계만 눈에 가득 들어왔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주라 제조 방식마저 전통을 고수할 것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대량 생산 시대잖아요. 옛날 방식만 고집하면 산업이 될 수 없죠.” 문배주 5대 전수자인 이승용(42) 씨가 말했다. 5대를 거치며 전통도 시대에 맞게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문배주는 본래 북한의 평양을 본거지로 한 전통 증류주다. 고려 때 태조 왕건에게 진상됐을 정도로 옛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그 향기로 유명한데, 토종 돌배종인 ‘문배’의 꽃과 과실향이 난다고 해서 이름도 그렇게 붙었다. 정작 술의 재료로 배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지만 말이다. 문배주의 톡 쏘는 듯 독특한 향은 조와 수수를 발효시켜 평양 주암산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강한 산성 지하 암반수와 결합했을 때 나타난다. 물론 남쪽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은 김포 서암리 지하수를 쓰고 있다.

문배주 4대 전승자인 이기춘 명인이 소주고리를 통해 증류하는 전통 제조 방식을 시범 보이고 있다. 발효된 막걸리를 소주고리에 넣고 끓이면 증발한 것이 이슬이 되어 한두방울씩 떨어지는데, 이것이 문배주가 된다. 사진=이상섭 기자

▶ 근현대사 고비마다 끊어질 뻔한 문배주 명맥

입으로 손으로 경험으로 전해지던 문배술 제조법을 복원한 이는 이승용 씨의 고조모인 박 씨 할머니였다.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났던 박 할머니를 보고 문배주의 사업성을 간파한 고조부는 양조장을 차렸다. 그 뒤를 2대 이병일 선생, 3대 이경찬 선생(1993년 작고)이 이었다. 일제시대였던 1940년대까지만 해도 이경찬 선생이 운영하던 평천 양조장의 명성은 중국, 러시아 등지까지 퍼질 정도로 상당했다. 4대 전수자인 이기춘(73) 명인은 “평천 양조장이 내는 세금이 평양시 1년 예산과 맞먹을 정도였다”며 “지하실에 현금이 가득할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평천 양조장의 기세는 물론이고, 문배주의 명맥마저 끊길 위기에 처했다. 이 명인의 가족들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부산, 제주 등지를 전전하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왔다. 다시 양조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양곡관리법으로 술 제조를 금지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 명인은 “보릿고개로 먹을 것도 없는 시절인데 술을 만드는 건 꿈도 못 꿨다”며 “정부에서는 물에 에틸알코올을 탄 희석식 소주를 만들라고 했는데, 문배주 만들던 자존심에 어떻게 화학식 술을 만들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문배주는 요즘에는 이런 현대식 설비를 통해서 생산된다. 경기도 김포시 문배주 양조장 내부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

그렇게 사업을 접고 나니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다. 이 명인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천직으로 받아들였던 양조업을 그만두고 대한항공에 입사,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전두환 정권 들어 양곡관리법이 풀리면서 이 명인 집안은 다시 술을 빚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문배주는 오랜 역사를 인정받아 국가 관리 아래 우리 전통술로 지정됐고, 1986년 아버지 이경찬 명인이 중요무형문화재 문배주 제조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이후 1990년 남북총리회담, 1991년 한ㆍ소련 정상회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만찬주와 건배주 등으로 쓰이면서 문배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갔다.

문배주는 최근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기춘 명인(사진)의 아들 이승용 씨가 직접 디자인한 유리병 용기를 사용하는가 하면, 용량 및 도수도 다양화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

▶ 전통, 그 이상의 문배주를 향해

문배주는 단순히 옛 것을 복원하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에 박제된 전통이 아닌, 현재에 살아있는 전통으로 계속해서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층의 감성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003년 이 명인의 아들 이승용 씨가 후계자로서 문배주 양조장에 입사를 하면서부터의 일이다. 이 씨는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앞으로 할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며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도 집안에서 문배주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대학 전공도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농화학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입사한 뒤 문배주는 훨씬 트렌디해지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기존에 하얀 도자기를 용기로 사용했던 것을 지난해부터 이 씨가 직접 디자인한 투명 유리병으로 세련되게 바꾸었고, 상품 라벨도 한자가 아닌 영문을 선택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여서 한 병을 다 마시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술 양도 200㎖로 줄이는 방식으로 배려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배주는 본래 알코올 도수를 40도에 맞춘 술이지만 23도, 25도 등으로 도수를 낮춰 젊은 층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개조하고 있다. 요즘 주류업계에 부는 저도주 바람을 수용한 것이다. 이승용 씨는 “도수를 낮춘 것은 쌀 등을 재료로 넣어 풍미가 다소 가볍다”며 “21도까지 낮춰보려 했는데 풍미가 너무 약해져, 문배주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까지만 도수를 내렸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마시는 방법도 언더록, 칵테일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 씨는 “팝업스토어라던지, 음식점 업소 등을 통해서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 질 좋은 술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안주 등 술 외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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