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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지은림이 살아가는 방법
도심 속, 숲속생태공동체 '숲속애(愛)' 숲속지기

[나는 서울시민이다=김영옥 마을기자] 그를 만난 건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던 날 오후였다. 도봉구 방학3동 초당초등학교 뒤편의 야트막한 야산 속에 들어서자 정겨운 공간이 나타났고 이내 낯선 방문객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다.

"와~~~ 도심 속 오아시스 같네."

파란지붕의 나지막하고 아담한 집이 나타났고, 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그 앞으로 노란 국화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대문 앞엔 빨간 단풍나무가 비에 젖어 더욱 고운 빛을 띠고 있었다. 작은 집 앞 쪽엔 공동체 텃밭에서 무와 배추가 실하게 자라고 있고, 주변엔 온통 가을 색을 띤 나무로 둘러싸인 곳, '숲속생태공동체 숲속애(愛)'(이하 숲속애)였다.

사계절 아이들의 숲생태 놀이와 숲생태 미술놀이가 열리는 숲생태 체험공간이자 어른들에겐 마을공방이고 마을 사랑방인 숲속애(愛)는 지역 주민들에게 아름아름 입소문을 탔고, 최근 공중파 방송과 신문에도 자주 소개되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이 되었다.

▲숲속생태공동체 숲속애(愛) 전경


숲속애의 문이 열리고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숲속애의 숲속지기 지은림(도봉구 방학동, 51세)씨가 방문객을 반겼다. 그를 따라 들어간 숲속애 내부는 그간 숲속애에서 아이들과 혹은 어른들이 함께 한 다양한 생태활동들의 면면들이 사방 벽면에 붙어 있었다.

그동안의 활동을 담은 사진들과 아이들과 함께 만든 목장갑 인형들, 숲속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솔방울 등 자연물들로 만든 곤충모양의 작품들과 앙증맞은 자연물 액자에서부터 지(종이)끈으로 만든 장식품들까지 종류도 참 다양했다.

집 주변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물로 어떻게 이런 것이 만들어질까 유심히 보고 있는데 “별 거 아니에요” 라며 지은림씨가 말을 건넸다. 별 거 아니라니, 도시 촌놈에겐 무척 특별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 도봉구 방학3동 숲생태공동체 숲속애 숲속지기 지은림씨


동네 아이들과 어른, 자연에서 제대로 놀 곳을 찾다

주민 누구에게나 열린 쉼터.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해 매주 계절마다 다양한 숲생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이곳이 궁금했다.

“자연친화적인 삶과 대안적인 교육을 펼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던 지역 주민들은 2011년 ‘그만 놀자(그리고 만들고 놀자)’라는 자연놀이 모임을 만들었고, 활동을 해 가던 중 마을에 숲속 공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으게 됐습니다. 10여명의 어른들은 공간만 있다면 우리들 뿐 아니라 아이들과도 자연놀이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공간을 찾아 나섰죠.”

숲속지기 지은림씨는 숲속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들을 떠 올렸다.

도봉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의 작은 커뮤니티 공간이었던 ‘나무야나무야’에서 어른들이 모여 숲놀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10년의 일이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제대로 놀아보자며 공간을 찾아 나섰다. 마침 알맞은 장소를 찾았다. 도봉구 방학3동 우성아파트와 초당초등학교 뒤쪽에 작은 야산이 있었는데 그 중간 지점에 집터와 700여 평의 공터를 발견했다.

쓰레기와 흉가로 10여 년간 방치됐던 그곳이 ‘그만놀자’ 어른들에겐 흙 속의 진주처럼 무척 반가운 공간이었다. 집 주변으로 생태텃밭과 숲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었고 주변은 산이었으므로 숲생태체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기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도심 속 숲속생태공동체 숲속애(愛) 탄생

“마을의 어느 종친회 소유의 산 중턱 공터였던 이곳을 보증금 1천만과 월세 30만원에 5년간 임대하게 됐어요.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 설명회를 통해 출자자와 정기회원을 모집했어요. 10만원씩~ 1백만 원씩 십시일반으로 선뜻 돈을 내놓는 이들로 인해 보증금은 금방 모였고, 이 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 30명이 모여, 매월 1만원씩 회비를 내서 월세를 마련하면서 2012년부터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죠.”

주민설명회를 열어 기존에 텃밭을 하고 있던 인근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주변에 산재해 있던 무단 쓰레기를 치우며 2012년을 보냈다. 2012년 텃밭 농사가 마무리 될 즈음, 기존에 무단으로 텃밭을 하던 주민 6명에게 숲속애의 취지를 설명하고 5년간 무상으로 계속 텃밭을 일구도록 수용해 갈등을 해결했다. 그리고 건물 앞, 뒤로 산재해 있던 텃밭을 건물 앞쪽 현재의 장소로, 뒤편은 생태놀이 공간으로 정비하게 됐다.

2013년 봄부터 생태텃밭 회원을 모집해서 텃밭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농제를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그대로 방치됐던 건물을 조금씩 보수하기 위해 벽돌기금 마련을 위한 증권을 발행했다. 개당 1만 원짜리 벽돌을 팔아 기금을 마련해 허물어져 있던 담을 하나씩 쌓기 시작했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지만 외부지원을 받을 경우 자립운영이라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반대의견이 나왔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공모신청을 하게 됐고, 공간조성사업 지원금을 받아 가능한 한 자연의 생태적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며 지금의 공간 모습을 갖췄다.

2013년 10월 공간조성이 마무리 되면서 '숲속애'라는 근사한 공간 이름도 생기고 현판식도 했다. 주민 주도의 활동이지만 공공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공간이 제대로 모습을 갖췄다.



숲생태 프로그램 진행 척척 ...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니 더 즐겁다

“20년 넘게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하다 2013년 7월에 퇴직한 상태였어요. 숲속애가 공간적인 안정을 갖추게 되면서 공간을 관리하고 본래 지향하고자 했던 생태놀이 활동을 진행할 책임자로 활동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 왔죠. 지역의 시민단체인 도봉시민회와 나무야나무야에서 간간히 자원봉사 활동을 해 왔던 터라 의뢰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을 해 버렸어요. 직장에 다니다 보니 전적으로 마을 일을 해 본 경험이 적어 기존 마을 일을 하던 사람들로부터 하나씩 배워 가며 숲속애를 운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초기 작업하셨던 분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에 바쁜 터라 숲속애 공방지기로서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초반엔 좀 힘들었어요.”

퇴직 3개월 만에 숲속애의 숲속지기로 활동을 시작한 지은림씨는 2013년 10월부터 공간을 지키기 위해 상주하기 시작했다. 공간은 늘 열려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고 활성화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있을 당시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 활동을 즐겨 한 그에게 숲속애는 참 잘 맞았다.

특히,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숲생태 놀이와 숲생태 미술놀이 등 생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기 시작했다. 숲생태체험놀이에 참여했던 유아들과 엄마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바로 옆 숲속의 자연물로 아이들과 부엉이도 만들고, 작은 액자도 만들고 염색과 바느질, 지끈 공예를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숲생태 미술놀이를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염색, 숲생태 체험놀이, 목공 등 다양한 성인 생태 프로그램들도 점차 진행됐다.

▲숲속애 생태 프로그램에 참가한 가족들


아이들에게는 생태놀이터, 어른들에게는 생태공방과 마을 사랑방이 된 숲속애

숲속애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제대로 놀 공간'이 돼 줬다. 숲생태 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들은 숲속애의 공터에 모여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다. 나무가지로 놀이하기, 종이끈으로 눈꽃 만들기, 천연염색한 목장갑으로 토끼인형 만들기, 텃밭에서 감자와 고구마 캐기 등 자연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숲속애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생태놀이터로 손색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숲속애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모이고, 모임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텃밭에서 난 열무로 국수를 해서 먹기도 하고, 쌈채소가 많이 날 때는 쌈밥데이와 마을밥상 번개모임도 가졌다. 또한 숲속애에서는 숲 속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 자연 놀이, 마을 미디어, 생태 디자인, 주제가 있는 영화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진 강좌들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공간 활동이 많아지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숲속애 내부는 갤러리가 되기도 했다. 캘리그라피를 배운 마을 사람들이 멋진 글귀를 적어 전시를 여는가 하면 주민들이 그린 그림과 일러스트 미술 작업을 했던 작품들도 숲속애에 전시 됐다.

“2014년엔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정말 많은 활동들을 했어요. 이렇게 많은 활동들을 하다 보니 외부의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숲속애가 미국 컬럼비아대의 혁신적 사고방식 연구대회 ‘프로젝트 이노베이션’ 2등에 선정됐는가 하면, 2014 행자부 지역공동체 우수사례 발표에서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점차 숲속애에는 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됐어요. 일이 많아져 힘든 때도 있지만 숲속애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백설공주 '숲속애' 숲속 공주가 되다.

사과 알레르기 때문에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있던 지은림씨는 숲속애에 와서 숲속지기를 시작하면서 ‘숲속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년 송년회 땐 주민들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 너무 좋다는 그녀. 숲속애라는 편한 공간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웃을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좋은 만남을 이어가는 공간이면 족하다는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숲속애를 지키고 있다.

“사실, 마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 안 해 보며 살았죠. 단순하게 마을은 집이 있는 곳으로 쉬고 자러 들어오는 공간이었어요. 요즘은 마을 활동을 하면서 마을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실감하며 삽니다. 마을 안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를 깨닫고 있어요.”

마을 공동체가 잘 조성되고 제대로 운영되는 데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동이 큰 동력이 된다. 숲속애는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노력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 마음을 보태는 일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 온 숲속지기 지은림씨가 특히 주목 받는 이유는 남다른 애정과 노력으로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정감 넘치는 공간을 만드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지은림 숲속지기에게 만들어 준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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