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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도서관에 누워서 공부하는 수재들
똑바로 앉아서 책 읽지 않으면 척추나 관절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 자랐다. 전문가들의 말이니 맞을 것이다. 하지만 두세 시간은 몰라도 종일 책을 읽거나 공부해도 그 자세를 유지해야만 할까? 세계적 석학은 물론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키워낸 바르샤바대학교 도서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대학 캠퍼스에 들어서면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정면에 위치한 구도서관(지금은 강의실로 사용되고 있다)과는 달리, 1999년에 완공된 신도서관에서는 아예 누워서 책 읽는 학생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도서관이 지혜와 학문의 세 뮤즈가 상단에 장식된 석조건물이라면, 철골과 유리로 하늘이 다 올려다 보이는 열린 구조의 신도서관은 유명한 폴란드 철학자들의 조각상이 입구의 원기둥 위에 각각 서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안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칸칸이 천편일률적으로 꼿꼿한 자세가 아니라, 키다리 철제 서고를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서로 다른 위치와 다른 모양의 책상에 흩어져 앉아 있어 마치 공부 놀이나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문을 마주보고 앉은 학생, 서고와 서고 사이의 1인용 독서대를 이용해 숨은 듯 공부하는 학생, 철제 지붕 사이로 열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원탁의자에 앉아있는 학생, 커피숍의 탁자와 의자를 닮은 분위기의 열람대에서 책을 읽는 학생, 철제 서고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보는 학생, 게다가 가장 눈을 끄는 자세는 공기 빠진 큰 공위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라는 듯 누워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다. 폭 가라앉는 짐볼 모양의 쿠션 속에 온몸을 파묻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그곳은 신도서관 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독서 공간 같았다.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뛴다. 번거로운 외투나 물건은 받아서 보관해준다. 개인 조명장치가 있어 눈의 상태나 독서의 종류에 맞게 밝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공부하다보면 목 축이느라고 자주 자리를 뜨게 되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저마다 가지고 온 물병으로 목을 축이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모습이다. 여러 군데 자리를 잡고 있는 사서들도 학생들에게는 동선을 줄여주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신도서관 건물을 나서면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주변의 지면이 꽃동산처럼 점점 높아지면서 계단을 따라, 영화 ‘건축학 개론’의 건물처럼, 지붕 위의 하늘정원에 올라서게 된다. 고기들이 노니는 연못에서부터 바르샤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붕 위의 식물원까지, 신도서관은 1헥타르에 달하는 아름다운 거대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 관광객들까지 찾아드는 이 정원까지 학생들은 독서공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필자는 새 소설도 구상하고 바르샤바대학교에서 할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신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리고 있다. 시민 누구나 출입증을 만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책이 잘 읽히는 것은 도서관 분위기 탓일까. 꼿꼿하게 앉아서도 읽고, 숨어서도 읽고, 뭐, 언젠가는 저 푹 가라앉은 짐 볼 속에 누워서 책 읽는 용기도 내보려고 한다. 음, 그러니까 어떤 자세라도 좋으니, 다들 가을에 좋은 책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어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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