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YS, 마지막 가는 길까지 北과 악연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화해와 통합을 마지막 유훈으로 남기고 88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지만 북한과의 악연의 고리는 끝내 끊지 못했다.

지난 2008년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튿날 바로 관영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 조전을 보냈던 북한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틀이 지난 24일 오전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북한의 악연은 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통령은 1960년 거제도 고향집에 침입한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어머니 박부련 여사가 살해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일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공산주의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박정희ㆍ전두환 정권 하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상공세를 받을 때마다 “북한 무장간첩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사람”이라며 반박했다.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일생 동안 끊임없이 ‘색깔론’ 공세에 시달렸던 것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은 개인의 아픔을 국정으로까지 연결시키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획기적인 대북정책의 전환 시사했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8일 돌연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의 주인공 역시 DJ가 아닌 YS의 몫이었다. 그러나 1993년을 기점으로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김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취임사에서 ‘민족’을 강조했던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며 북한과의 대화 단절을 선언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남측에서 불거진 조문파동은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

문민정부가 김 주석 사망 뒤 전군에 특별경계령을 내리고 조문방북과 추모행사를 금지하자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해가며 ‘민족의 역도’, ‘극악한 원수’ 등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이후 대학가에서 ‘김일성 분향소’가 발견되고 ‘주사파논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남북관계는 회복불능 상태로 빠졌다.

현재로선 북한이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맞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의 조전 발송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조전을 보내고 조문을 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 등 인연을 고려한 것”이라며 “김일성 주석 때 조문파동 등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반감이 큰 북한이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오히려 연평도 포격전 5주년이었던 23일 우리 군이 실시한 서해 해상사격훈련에 대해 무자비한 응징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김 전 대통령 국가장 기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찬물을 끼얹고 있다.

shind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