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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화합과 통합’ 遺志 남기고 永眠한 YS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22일 새벽 서거했다. 고인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하며 한국 현대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야말로 ‘큰 산’과 같은 존재였다. 전국 곳곳에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인파가 연일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위상과 무게감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제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편안히 영면(永眠)하길 바란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자유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3선 개선에 반대하며 곧바로 뛰쳐나왔다. 이 때부터 거산은 독재와 권위주의 청산을 필생의 신념으로 여겼다고 한다. 27세의 나이로 3대 민의원이 된 그는 전두환 정권의 정치활동 규제로 총선에 나서지 못했던 11,12대를 제외하고는 14대까지 내리 당선됐다. 그리고 마침내 14대 대통령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그의 9선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성원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 과정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험난했다. 1979년 ‘YH무역 사건’으로 의원직에서 제명됐을 때 그는 당시 신민당 총재였다. 야당 대표를 국회에서 강제로 내쫓은 이 사건은 결국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단초가 됐다.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도 이 때 나왔다. 1983년에는 장기 독재를 획책하는 신군부에 맞서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23일간 단식을 결행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그동안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개혁에 나섰다. 임기 초반 90%를 넘었던 국민들의 지지는 개혁의 최대 동력이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공직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고, 군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과감히 척결했다.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단행은 ‘YS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로 금융거래 질서 정상화의 획기적 변화로 연결됐다. 막판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취소되기는 했지만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도 평가할만하다. ‘청와대 식사는 칼국수’라던 그의 검약정신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13대 총선이후 노태우 정권의 민정당 주도로 이뤄진 ‘3당 통합’에 참여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정당화했지만 ‘군부 독재와의 야합’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에 헌신한 공은 인정하지만 지역주의 할거와 정치의 독과점 등의 폐해도 ‘YS 정치’의 한계였다. 특히 금융과 기업 정책 실패로 임기 후반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은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이 차남 현철씨를 통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통합과 화합’이다. 이제 그를 떠나보내며 이리 찢기고, 저리 갈라진 우리 사회를 봉합하고 서로 다독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역대 최다선 기록을 보유한 YS는 철저한 의회 신봉자다. 여야 정치권이 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할 준엄한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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