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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의 재구성] 무기수 딸의 미스터리 ‘옥중 사부곡(思父曲)’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나를 믿어달라 요구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하늘한테만 인정받으면 돼요. 내가 아니까, 우리 아빠가 아니까. 근데 내가 만약 장애인, 서민 딸이 아니고 재벌 딸, 정치인의 딸이었어도 나를 그렇게 함부로 재판할 수 있었을까요.”

친부 살해 혐의로 1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38·여)씨에 대한 법원의 재심 결정이 지난 18일 이뤄졌습니다.

복역 무기수에 대해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화제를 모았죠.

[사진=게티이미지]

비록 형 집행을 정지시킬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15년 전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위법 요인이 발견됐기 때문에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씨는 15년동안 줄기차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 왔습니다.

가석방과 감형을 포기하면서까지 노역을 거부하면서 결백을 호소했는데요, 무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동안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건은 2003년 3월로 거슬러 올가갑니다.

당시 스물셋으로 서울에서 지내고 있던 김씨는 남동생을 데리고 오려고 고향집인 전남 완도에 내려갑니다.

50대인 김씨의 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이었습니다.

집이 멀어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 집에 도착한 김씨는 수면제 30알을 으깨어 미리 준비한 양주에 탔고, 이를 아버지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큰딸이 준 술잔을 의심 없이 들이킨 아버지에게 김씨는 갑자기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합니다.

차에 탄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김씨는 집에서 약 7㎞ 떨어진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 숨진 아버지를 내려놓습니다.

미리 가져온 깨진 방향지시등을 주변에 떨어뜨리는 등 사고사로 위장한 뒤 현장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시각은 아침 6시가 다 된 시간이었죠.

김씨의 범행을 눈치 챈 고모부는 자수를 권했고, 사건 발생 하루만에 스스로 경찰서에 걸어 나오게 됩니다.

경찰은 김씨의 살해 동기가 아버지의 성추행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 이에 대한 복수극이었단 것이죠.

두 달 전에 만난 이복 여동생도 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해 분노가 더해졌습니다.

당일 범행 계획을 순서대로 적은 메모지가 집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 앞서 아버지 앞으로 상해보험 8개를 들어놓은 사실도 밝혀졌는데요, 범행에 보험금 수령 목적도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사와 재판 과정에 들어가자 김씨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아버지가 성추행한 사실이 없고, 남동생이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을 것을 우려해 대신 자백한 것이라고 강하게 밝혔습니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사건 당일 새벽 1시경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지만 무산되자 혼자 바닷가에 앉아 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다 차에서 잠들었고,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자백 역시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남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성추행이 동기였다고 할 경우 감형 가능성이 있단 고모부의 ‘코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죠.

그러나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살해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그는 복역 중 줄곧 ‘파렴치범이 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또 보험 규약상 아버지가 사망하더라도 가입 2년 이내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는 점을 들어서도 무죄를 주장했죠.

그러면서 모든 진술이 경찰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며 재판을 다시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고, 이런 사연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올초 재심을 청구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열리게 될 재심으로 김씨의 미스터리한 ‘옥중 사부곡(思父曲)’의 진실이 풀릴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gil@heraldcorp.com


<‘김신혜 사건’ 일지>

▶2000. 3. 7=전남 완도군 정도리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김씨의 아버지 숨진 채 발견
▶2000. 3. 9=경찰, 존속살해 혐의 등으로 김씨 긴급체포
▶2000. 4. 1=검찰, 존속살해·사체유기 혐의로 기소
▶2000. 8. 31=광주지법 해남지원, 무기징역 선고
▶2000. 12. 28=광주고법, 김씨 항소 기각
▶2001. 3. 23=대법, 김씨 상고 기각
▶2015. 1. 28=김씨·대한변호사협회 재심 청구
▶2015. 5. 13=광주지법 해남지원, 재심청구 심문
▶2015. 11. 18=광주지법 해남지원, 재심개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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