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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손님은 무슨…” 장서(丈壻)갈등 시대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경기도 광주에 사는 임연희(34·여·가명) 씨는 얼마 전 친정에 있다가 갑자기 짐을 싸서 나와야 하는 일을 겪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친정을 찾았는데, 밥을 먹은 뒤 쇼파에 누워 TV를 보던 신랑에게 친정 엄마가 싫은 소리를 한게 화근이 됐다.

임씨는 “평소에 조카사위 칭찬을 많이 들으시는 엄마가 봤을 땐 사위가 집안일도 잘 도와주지 않는거 같고, 딸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던 불만이 쌓여 있었다”며 “시댁이 좀 가난한데, 집을 얻을 때도 친정한테 도움을 받아서 남편도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어 더 과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헤럴드자료사진

바야흐로 장서(丈壻·장모와 사위) 갈등 시대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고부(姑婦) 갈등이 사회문제가 돼 왔다.

하지만 여성의 활발해진 사회 진출과 경제력 상승 등으로 부계 중심 사회가 와해되면서 장모가 더 이상 사위 눈치를 봐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둘 사이의 대립이 잦아지면서 급기야 이혼 사유로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평생 늘 어려운 손님으로 맞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위를 ‘백년손님’이라 부르던 풍속은 점차 사라지고, ‘사위 사랑은 장모’,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등의 말들도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미영(29·가명)씨는 결혼 3년차 주부로 6개월 된 아기를 갖고 있다.

육아 휴직을 내고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지만,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러 근처에 사는 친정 엄마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에 온다.

평소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여행에서부터 남편과 엄마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가정적이고 세심한 반면 엄마는 선이 굵고 주의주장이 강한 스타일이라 장모로서 2박3일 동안 사위가 사사건건 참견하는 말에 기분이 무척 상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엄마가 이해하라고 말했다간 큰소리치면서 육아를 도와주지 않을 것 같고, 불편해도 당신이 이해했어야지라고 했다간 신랑도 속상할 거 같아서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난처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서갈등은 시대 변화에 따라 처가의 도움 없인 육아와 맞벌이가 힘들어지면서 생겨난 풍조로 특히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장모가 가정경제나 가사, 자녀계획까지 간섭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위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장모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현상이다.

장모 입장에선 딸을 기르고 공부시킨 것에 비해 결혼 후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사위를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집살이를 가리키는 ‘시월드’라는 신조어에 이어 ‘처월드’라는 말도 탄생했다.

드라마에서도 장서 갈등이 단골 소재화되면서 ‘구박받는 남편’, ‘처가에 잡혀 사는 신랑’ 등 못난 남편들의 모습이 자주 그려지는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 응답자의 32.5%가 최근 1년간 가족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 중 장서갈등을 포함한 세대갈등이 37.5%로 가장 많았다.

장서갈등이 이혼사유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와 재혼전문사이트 온리유가 지난 2011년 벌인 공동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재혼 상담 신청 남성 123명의 이혼배경 중 ‘처가의 간섭’이 26.0%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박소영 세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위들은 결혼 전에 장모가 잘해줄 것이란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실제 결혼 생활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갈등을 겪는다”며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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