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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22> 아랍에미리트]‘강한 UAE’이끈 아부다비 왕실…사막을 낙원으로…
농사·진주채취하던 자이드 대공황에 치명타
서방 석유탐사팀 안내로 오일산업 눈떠
세련된 정치술·친서방 외교로 위상강화
자이드 뒤이은 칼리파 국방력 증강에 힘써
복지지원금 확대로 민심 지지 얻어
이복동생 모하메드는 경제활성화 견인
현 부총리 만수르도 권력 핵심으로 부상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UAE)의 건국 대통령인 셰이크 자이드 알 나흐얀의 다섯째 아들이다. 지금이야 만수르와 알 나흐얀 가문의 재력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지만,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30년대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했다. 집안을 일으켜 세운 것은 셰이크 자이드다.


1928년 자이드의 형 샤크부트가 셰이크에 올랐을 때 나흐얀 가문의 생업은 농사와 진주 채취였다. 그나마 진주 채취는 1929년 터진 대공황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학교에 갈 형편이 안되던 자이드는 대신 사막생활과 여행으로 현실에 눈떴다. 그런데 이 사막생활이 ‘로또’가 됐다.

1930년대 초 서방의 탐사팀이 석유개발 1차 조사를 위해 이 지역에 도착한다. 자이드는 사막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때 탐사팀을 안내한다. 자연스레 알 나흐얀 가문이 가장 먼저 석유에 접근하게 됐고, 엄청난 부를 거머쥔다. 1946년 자이드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쿠테타로 형을 대신해 셰이크에 올랐을 때도 온 나라가 그를 지지했다.

자이드는 중동에서 보기 힘든 세련된 정치술로 아랍에미리트를 이끌었다. 파격적인복지로 내부 민심을 어루만졌고, 적극적인 대외원조와 친서방 외교로 대외적인 위상을 높였다. 특히 개방과 개혁, 관대함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경제정책에서도 항상 ‘자연과 인간’을 함께 고려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됨은 물론, 여성과 외국인들의 삶도 편리하다. 1963년 채 10만명이 안돼던 인구가 1980년 100만, 2005년 400만명을 돌파하고 2010년 800만, 2012년 900만명까지 넘어설정도로 급증한 것은 가파른 이민 덕분이다. 그만큼살기 좋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셈이다.

2004년 자이드의 뒤를 이은 셰이크 칼리파는 ‘번영하는 UAE’에서 ‘강한 UAE’의 모습도 더하고 있다. 그는 고도의 군사훈련과 최첨단 무기구입 등 국가 방위력 증강에 힘써 1990~1991년 걸프전과 소말리아 및 코소보의 평화유지활동에 UAE군을 파견했다.

경제적으로는 석유 자원 외의 산업 발전을 위해 국제원조 프로그램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자산규모 608조원의 세계 3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과, 자산규모 93조원의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가 선봉에 섰다.

인구가 급격히 늘었지만 복지를 더욱 강화한 점도 눈에 띈다. 칼리파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UAE 국민에게 돌아가는 복지 지원금(석유자본을 통해 얻은 수익을 국민에게 임금 형태로 환원하는 지원금)을 25%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두바이 사태로 인해 아부다비까지 타격을 받았을 때 칼리파는 이를 다시 70%나 인상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경제’만한 수단이 없음을 간파한 것이다.

칼리파는 ADIC를 통해 유독 교육, 보건, 교통 등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왔다. 모두 삶의 질과 관련된 투자다. UAE는 이를 통해 칼리파를 ‘인간을 사랑하는 지도자’, ‘휴머니즘의 선두주자’라 각인시켰다.하지만 날때부터 부자였던 탓인지 칼리파는 자이드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칼리파는 최근 아프리카 남단에 위치한 섬 세실야의 궁전을 짓기 위해 1995년 2억 달러를 투자했다. 세실야 공화국에는 1억 3000만 달러의 복지와 군사원조를 약속했다. 그런데 궁전이 지어지면서 현지 거주민 8000명이 강제 이주당했다. 칼리파의 세실야 궁전은 금으로 도배될 정도로 초호화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이드와 칼리파로 이어지면서 번영을 이룬 알 나흐얀 가문이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왕과 왕세자의 미묘한 경쟁 때문이다.

칼리파의 이복동생 모하메드는 아부다비 경제활성화에 공이 커 국민들의 지지가 높다. 페라리 월드의 소유자이자면서, 제네랄일렉트로닉(GE)의 대주주인 모하메드 왕세자는 아부다비의 경제구조를 관광산업 등 비석유분야로 탈바꿈시켰다.

자이드 이후 군주는 칼리파였지만 실제 나라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모하메드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칼리파가 국민 지원금을 두 차례나 파격적으로 인상하 것도 모하메드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 있다.

만수르 역시 아부다비의 권력구도를 좌우할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 현 부총리이고, 아부다비 왕족들의 개인자산을 운용하는 국제석유투자공사(IPIC, 아부다비) 수장이다. UAE 연방정부 소속 국부펀드 에미리트투자청(EIA) 의장도 겸한다. 개인적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영국 바클레이스와 세계적 자동차기업인 다임러 최대 주주이다.

무엇보다 만수르는 지난 2005년 두바이 공주인 셰이카 마날 빈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을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했다. 마날의 아버지는 두바이의 군주이자 UAE의 부통령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이다. 아부다비의 왕자이자, 두바이의 부마가 되면서 만수르의 정치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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