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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박영상] 역사학계에 맡기는 것이…
‘역사 교과서 논쟁’은 세 갈래 쯤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정 교과서는 나쁘고 검인정은 좋은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교과서 개편이 좌편향을 바로 잡는 것인지 아니면 친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는 중ㆍ고교 교과서에 다양성이 필요한지 등이다.

얼핏 실타래 같이 엉키어 있는듯하지만 제대로 쓴 역사를 기초 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로 좁힌다면 문제는 간단한다. 역사는 ‘인류 사회의 흥망과 변천 과정의 기록’ 쯤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사족을 달면 역사적 사실(fact)을 해석하는 작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어났던 사건을 단순히 나열한 것은 연대기일 뿐 역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현재를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연역이 아니라 귀납이어야 마땅하고 오늘을 제대로 알기 위한 설명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과거사의 명암을 소상하게 알리는 것이 역사가, 그리고 역사 교육이 할 일이다. 어떤 가치나 이념에 치우쳐 한쪽에 방점을 찍거나 교묘하게 뒤틀어 과거의 참 모습을 일그러트렸다면 이건 역사가 아니다. 더구나 맑은 청소년들에게 일그러진 과거의 모습만을 가르친다면 이는 세뇌이지 교육이 아니다.

국정교과서가 썩 좋은 인상을 지닌 것은 아니다. 독재나 전제주의 국가가 국정교과서를 발간해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인정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원래 검인정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국정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검인정제가 도입된 후 과연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성이 확보되었는지를 따져 봐야한다. 작년의 교학사 교과서 파동에 대해서 국정교과서의 다양성 훼손 가능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교과서는 부실하고 편향되어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특히 근현대사 중 대한민국의 정통성, 경제성장 과정,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착 등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하 지도층들의 친일행적,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무능, 부패, 독재 등 어둡고 초라한 모습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뭐라고 얘기할지도 궁금하다.

사관(史觀)도 문제다. 중고교생에게 사관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중고교의 역사교육은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치는 것으로 족하다. 상식보다 조금 더 세련되고 체계적으로 과거를 알면 된다. 사관정립은 그 후의 문제다.

바로 잡을 일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까지 시위하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목청이나 높이는 것으론 절대로 해결 안 된다.

이념이나 정치적인 득실을 따지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이제 역사학자들의 양식에 맡기고 객꾼들은 손을 떼는 것이 역사교과서 논쟁을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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