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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고도 당한다, 포장의 트릭]“사기다”…소비자들은 정말 뿔났다
-버블 짙은 과대 포장에 불만들 계속 쌓여가
-“포장 원하는 고객에만 하는 방식을” 의견도
-“디자인이 경쟁력”…포장 옹호론도 적잖아



[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빼빼로데이(11일)와 수능(12일)을 앞두고 거리에는 바구니부터 각종 박스를 활용해 풍성하게 포장해놓은 선물용 제품들이 넘쳐난다. 포장값만 해도 적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이같은 풍경은 각종 기념일이나 명절을 앞두고 펼쳐지는 흔한 모습이다.

과대포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자는 물론 화장품, 식품, 완구 등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이에 소비자단체는 과대포장으로 인한 제품 비용 상승과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환경부도 명절마다 집중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과대포장은 여전히 더 크고, 더 근사한 겉모습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한 과자업체의 상품. 포장을 빼내면 내용물은 전체 케이스의 5분의1 정도로 밖에 남지 않는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곳은 과자다. ‘질소를 사면 과자는 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제과업계의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불만이 커졌고, 수입과자의 매출이 크게 증가하는 반사이익이 생기기도했다. 실제로 컨슈머리서치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롯데제과ㆍ오리온ㆍ해태제과ㆍ크라운제과 등 4개 제과업체 과자 20종의 포장 비율을 직접 측정한 결과 85%인 17개 제품 내용물의 부피가 포장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어린이들이 즐겨찾는 과자. 질소 포장을 빼내니 남는 과자의 양이 쑥 줄어든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질소과자에 대한 속시원한 비판은 질소과자 뗏목 퍼포먼스다. 지난해 9월 대학생들은 질소과자의 부력을 이용해 만든 뗏목으로 한강을 건너가 사회적 호응을 이끌어냈다. 최근 제과업계에서 과대포장을 없애고, 양을 늘리는 등 자성의 노력이 나온 것은 소비자 불만이 커진데 대한 위기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명절은 각종 선물세트의 과대포장이 늘 문제가 되는 시기다. 과일세트의 경우 표시 중량에 1㎏이 넘는 포장 무게까지 포함되는 것이 많다. 8㎏짜리 과일세트를 샀지만 과일은 7㎏에 불과하다는 이야긴데, 실제 과일 중량을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최현숙 컨슈머리서치 대표는 “과일 박스의 경우 크고 두꺼워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 이를 제품 중량에 포함시켜 판매하는 것은 불법적 영업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포장을 하는 장면.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음식료품류는 포장공간 비율이 10~35% 이하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치며 이 과태료 규정은 식품 외 다른 품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화려하고 큰 포장으로 눈속임을 하는 것으로는 화장품도 빠질 수 없다. 고가의 에센스나 크림 등은 용량이 50ml 정도인 것도 많은데 이는 소주잔 한컵 수준이다. 이 적은 용량을 어떻게 잘 포장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화장품 내용물이 포장과 함께 하나의 완성상품으로 만들어지는 장면.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직장인 정모(36) 씨는 “아이크림 뚜껑을 열면 안에 작은 용기가 하나 더 있어 그 안에만 내용물이 들어있는 식”이라며 “처음에는 조금 황당했는데 이제는 겉용기 크기를 믿지않고 용량을 꼭 확인한다”고 했다.

눈속임에 들이는 공도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세심해진다.

최근 한 화장품 브랜드는 같은 라인에 두 종류의 크림을 출시했다. 두 제품의 용량은 60ml로 동일하지만 3만원대와 5만원대로 가격 차이가 나고, 이에 따라 포장 상자 크기도 두배 가량 차이가 났다. 60ml가 담긴 내부용기는 동일했지만 고가제품은 별도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추가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은 패키지 디자인 자체가 경쟁력으로 포장에 공을 많이 들일 수 밖에 없다”며 “고가 제품으로 갈수록 소비자들도 화려한 포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좋지 않다. 소비자시민모임이 과거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85.7%는 과대포장으로 인한 불편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편한 이유로는 포장이 내용물보다 지나치게 크고(27.6%), 포장재 쓰레기가 많이 발생해 처리가 어려우며(25%) 포장비용으로 전체 상품 가격이 비싸졌다(23.5%) 등을 꼽았다.

과대포장은 허례허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것이 사실이지만,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미국 프록터앤갬블(P&G)사의 스킨케어 브랜드 올레이는 2018년부터 일부 제품 포장을 바꾸기로 했다. 용량보다 훨씬 큰 용기에 담아 판매함으로써 소비자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했다며 캘리포니아 검찰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결과다.

캘리포니아주 지방검사들과 캘리포니아 4개 카운티 원고측 변호인단은 과대포장(slack-fill)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주와 미국 연방정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화장품, 데오드란트, 후추, 과자에 이르기까지 과대포장 제품을 만든 다양한 업체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존슨앤존슨도 올초 뉴트로지나 제품 과다 포장과 관련해 비슷한 소송에 휘말려 50만6000달러(약 5억7600만원)를 합의금으로 낸 바 있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업체들이 제품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포장 디자인에 나서고 있는데, 과자처럼 착시효과를 노려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는 사라져야할 것”이라며 “또 원하는 소비자들만 포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허례허식에 물든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도 병행해야 한국적 과대포장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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