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진영의 읽는 노래> 34. 헐거워진 인연을 다시 묶어주는 사소한 용기 ‘안부전화’
[HOOC=정진영 기자]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가끔가다 보면 또 저런 일/때론 어처구니없는 일/두통보다 골치 아픈 일/아무렇지 않은 얼굴로/속은 상할 대로 상한 채로/배는 자꾸 고파 오는데도/요즘 들어 입맛도 하나도 없구요”

실행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실행하기까지 과정이 참 어려운 일 하나가 있습니다. 크게 돈이 드는 일도, 대단히 시간을 잡아먹는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실행을 미루다보면 몇 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일이 다반사이죠. 그 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바로 지인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입니다. 

“연락처 300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내 얘기를 내 얘기처럼 들어줄/내 친구 어디서 뭘 하는지/한해 한해 지날수록 네가 보고 싶다/친구야/우리가 어렸을 땐/이런 저런 일로 힘들었어도/지금보다 훨씬 많이 즐거웠었지”

여러분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한 번 살펴보시죠. 그 중에서 지금 당장 마음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보시죠. 업무의 특성상 사람을 만날 일이 많은 기자는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이 1000명 단위를 넘어 가는군요. 그런데 전화번호부에는 기자가 기자가 아니라면 인연이 끊어질 사람들의 이름이 대다수였습니다. 심지어 누구인지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음 편하게 지금 당장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살짝 ‘멘붕’이 오더군요. 김조한의 신곡 ‘내가 먼저 찾아갈게’는 누구나 종종 겪는 이런 상황을 재치 있는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김조한의 신곡 '내가 먼저 찾아갈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사진 제공=유튜브 캡처]

“친구야 별일 없니/이런 전화 한 통 하기 어려울 만큼/삶은 생각보다 무겁진 않단 걸/이제 아니까/기다림 없이 내가 먼저 찾아 갈게요”

여러분은 안부 전화 한 통이 왜 어렵던가요?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먹함을 극복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오랜만에 생각지도 못한 지인의 안부전화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우선 반가운 마음부터 들지 않던가요? 물론 대단한 인연도 아닌데 과도하게 반가운 티를 내는 안부전화는 원치 않는 금전관계와 연결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말이죠.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내가 태어난 후로 우리 집은/내 기억에는 없는데/꽤나 유명한 악동이었대 내가/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모든 아들이 다 그렇겠지만/엄마/이름만 불러도 왜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픈지”

기자는 16년 째 같은 휴대폰 전화번호를 사용 중입니다. 기자는 스마트한 요즘 세상에선 보기 드문 피처폰 ’01X’ 식별번호 사용자이죠. 이 때문에 기자는 가끔 아주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생각하지도 못한 안부 전화를 받곤 합니다. 얼마 전 기자는 정말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자도 놀라고, 동창도 놀랐습니다. 동창은 설마 기자가 오래전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동창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기자가 덜컥 받으니 놀랄 수밖에요.


“워낙 고집스런 못난 아들이라서/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는지/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당신께/드리고 싶어지는 한마디/깊어진 주름과 눈에 띄게/늘어난 흰머리를 볼 때마다 목이 메어와”

기자는 그날 동창과 약 30분 가까이 통화했습니다. 서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오랜 세월 동안 쌓였던 서먹함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더군요. 기자가 먼저 그 동창에게 안부전화를 걸었어도, 그 동창의 마음 또한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헐거워진 인연의 끈을 다시 팽팽하게 묶어준 것은 동창의 사소한 용기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소한 용기를 내지 못해 매 순간 인연의 끈을 한 가닥씩 놓쳐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엄마 별일 없죠/이런 전화 한 통 하기 어려울 만큼/삶은 생각보다 무겁진 않단 걸/이제 아니까/기다림 없이 내가 먼저 찾아갈게요”

동창과 전화통화를 나눈 이후, 기자는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담긴 친구들의 이름을 훑어보았습니다. 오래전 서로 붙어 다니지 못해 안달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어느새 먼저 안부전화 한 통을 건네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멀어져 있더군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기자가 아버지께 안부전화를 드린 것도 3주 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기자는 죄송한 마음에 급히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반가움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들 별일 없냐는/인사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삶은 생각보다 무겁진 않단 걸/이제 아니까/그리운 나의 사람들/소중한 나의 사람들/보고 싶어서 내가 먼저 찾아갈게요”

123@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