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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66. 남미의 보물 ‘빠라찌’…노점의 까이삐리냐 한 잔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남미 여정도 저물어가고, 리오데자네이루에서의 치안걱정도 지겨워져 오전에 빠라찌(Paraty)로 가는 버스를 탄다. 대도시를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으로 버스창에 기대어있는데 시 외곽으로 빠지기 직전, 갑자가 버스가 멈춘다. 넓은 길에는 차들이 그대로 멈춰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선다. 잠시 동안의 정체이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도로위의 모든 차량들이 갑자기 얼음이 된 듯 정차해 한 시간을 움직이지 않는다. 서행이라도 해야 정상일 텐데 이런 경우는 살면서 처음이다.

차를 이리저리 돌려 되돌아가거나 다른 길로 빠지는 차량은 극소수이고, 운전기사는 아예 차에서 내려서 다른 차의 운전수와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어찌된 일이냐 따지고 화낼 법도 한데 승객들은 그냥 조용하고 기사의 얼굴에도 별 근심이 비춰지지 않는다. 한 시간이 넘게 그렇게 멈췄다가 서서히 출발하는 차량의 행렬은 놀랍기만 하다. 가다보니 웃옷을 입지 않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염병을 들고 도로를 점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춰지는 장면인데 자주 있는 일인지 브라질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다. 더 큰 사고가 아닌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보다.


덕분에 버스는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기고 빠라찌에 도착한다. 작은 터미널에 내려보니 빠라찌는 리오데자네이루와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센트로라고 불리는 중심가도, 버스터미널도, 마켓도 거기서 거기인 손바닥만한 작은 마을인 것이다. 리오에서의 불안했던 마음이 도착과 동시에 사라진다. 대도시와는 다른 소소한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호스텔을 찾아 짐을 풀어 놓고 해가 쨍쨍한 한낮을 피해 시골마을 마실 나가듯 천천히 마을을 돌아다녀본다. 


잘 곳을 정했으니 여행자의 남은 할 일은 먹는 일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이름은 모르지만 꽤나 큰 생선구이를 주문한다. 저녁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남미사람들의 저녁 식사시간이 늦다보니 오후 7시정도에 저녁을 먹어도 식당에 사람이 거의 없다.

분위기도 좋고 친절하기도 한 레스토랑에서 평소보다 비싸고 분위기 있는 저녁을 먹는다. 별로 할 일도 없이 쫒기듯 오게 되엇지만 이 느긋함과 편안함이 좋다. 식사하는 동안 해는 지고 레스토랑 바로 앞 어두워진 공원에는 사람들이 모여 든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더 여유 있는 날이다. 성당 앞의 노점에 켜진 불빛이 다정해 보인다.


마침 “까이삐리냐(Caipirinha)”라는 브라질 전통의 칵테일을 파는 노점 아저씨를 발견한다. 삥가(Pinga)라는 사탕수수 증류주인 브라질 전통술에 라임과 설탕, 얼음을 넣어 만드는 까이삐리냐를 섞는 아저씨 손길이 바쁘다. 인상 좋은 아저씨는 넉넉하게 만들어서 넘치게 따라 준다. 


공원 안의 벤취에 앉아 동행들과 까이삐리냐 한 잔에 여행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낸다. 갈 길이 다른 동행들은 이틀 후면 이별이다. 이 머나먼 곳에서 만나 함께한 인연의 끝을 아쉬워하며 마시는 까이삐리냐는 술술 잘도 넘어간다. 리오에서 너무 경직되어 다닌 건지, 이별의 안타까움이 겹쳐서 그런 건지 이곳에서는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꼴깍꼴깍 잘도 넘어가는 라임향 상큼한 까이삐리냐를 한 잔씩 더 마시며 밤이 깊어간다.


아기자기한 쇼들이 일요일 밤 공원 앞에서 공연된다. 많은 관객은 아니어도 쳐다봐주고 박수쳐주는 몇 명만으로도 재미있는 소박한 분위기다. 공연장에서는 연주가 한창이라 일요일 밤의 빠라찌는 분위기가 고조된다. 음악을 몰라도, 언어가 달라도 연주자들의 신명과 관객들의 흥겨움이 전해 와서 바라보고 있는 이방인의 손끝에도 리듬이 실린다.

밤이 늦어도 걱정할 것 없이 호스텔로 돌아간다. 두 잔 마신 까이삐리냐가 적당히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있다. 눅눅한 무더위에 땀을 흘리면서 걸어도 리오에서 빠라찌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미에서의 마지막 풍경이 대도시가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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