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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1조원대 유산두고 벌어진 아내와 숨겨진 딸의 상속분쟁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ㆍ김현일 기자] 억만장자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아내 앞에 남편의 친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자신이 ‘아버지의 숨겨진 딸이다’며 유산 상속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이 싸움은 법정으로까지 갔다.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유전자 검사도 받겠으니 아버지 시신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본부인은 ‘나 외에 그 누구도 (시신에) 접근할 수 없다’며 맞섰다. 본부인과 혼외자식 간에 상속분쟁이 벌어지면서 벌써부터 그 결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루지야 억만장자 카카 벤두키츠와 숨겨진 딸로 알려진 아나스타샤 곤차로바

두 여자의 다툼은 지난 해 11월, 그루지야의 억만장자 카카 벤두키츠(Kakha Bendukidze)가 58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카카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후 영국 런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안정을 취하는 와중에 눈을 감았다. 10억달러(한화 약 1조13000억원)에 달하는 그의 유산은 자연스레 아내 나탈리아 졸로토바(Natalia Zolotova)에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아나스타샤 곤차로바(Anastasia Goncharova)라는 24세 여성이 카카의 장례식에 찾아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자신이 카카의 숨겨진 딸이라며 아버지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때부터 러시아와 그루지야에 퍼져 있는 카카의 부동산 및 주식자산을 놓고 다툼이 시작됐다.

두 여성 간 분쟁의 승패를 좌우할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자’ 카카가 쥐고 있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카카의 친딸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전자 샘플 확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아버지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검시관의 지시에 따라 런던의 임페리어 칼리지로 옮겨져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상태였다. 나탈리아는 본인 외에 그 누구도 시신에 접근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카카 벤두키츠의 아내 나탈리아 졸로토바

결국 그루지야 억만장자의 1조원대 유산을 놓고 벌어진 분쟁은 런던 법정으로까지 옮겨갔다. 공판 과정에서 아나스타샤 측 변호사는 “나탈리아가 죽은 남편의 시신을 마치 협상카드로 악용하고 있다”며 “아버지의 친딸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나탈리아 측 변호사는 “아내와 가족이 남편의 생체 조직에 대한 모든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맞섰다.

지난 달 28일, 고등법원은 아나스타샤의 손을 들어줬다. 판사는 “양측 사이의 중요 쟁점은 ‘아나스타샤가 카카의 딸이냐, 아니냐’다. 현대 의학기술로 이를 빠르게 입증할 수 있는데도 카카가 죽은 이후 11개월간 아무런 시도가 없었다. 나탈리아는 이 해프닝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카카의 유전자 샘플과 소량의 혈액은 유전자 검사를 위해 러시아로 보내질 예정이다.

카카 벤두키츠

카카는 구소련 시절 트빌리시 국립대와 모스크바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 출신이다. 이후 러시아로 넘어간 그는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을 타고 사업에 나섰다. 특히, 중장비 생산업체 OMZ의 지분을 사들여 회장에 오른 카카는 OMZ를 러시아 최대 중장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루지야로 돌아온 직후엔 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며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유주의 기조를 내걸고 경제성장을 이끌어 그루지야에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중산층을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된다. 죽기 전까지 러시아와 그루지야 일대에 10억달러에 달하는 주식, 현금, 부동산 자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탈리아와는 1999년에 혼인했다. 아나스타샤가 태어나고 9년 뒤였다. 첫번째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을 홀로 키우던 나탈리아는 카카와 재혼하고 15년간 부부관계를 유지해왔다.

아나스타샤 역시 10살 때부터 카카와 왕래하며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나스타샤는 “처음엔 카카를 그저 가족의 가까운 친구로 알고 지냈다. 그런데 내가 18살 될 무렵 그는 자신이 나의 아빠라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정말 가깝게 지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빠의 지인들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아빠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눈물을 보였다. 특히, 보조개가 아빠와 판박이였다”고 밝혔다.

카카 벤두키츠와 아나스타샤 곤차로바

일단 ‘승기’를 잡은 아나스타샤는 유전자 검사결과 친자임이 입증되면 아버지의 유산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현재 런던의 한 PR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녀는 유산을 받게 되면 아버지가 그루지야에 설립한 대학교 두 곳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승소한 직후 법정에서 나온 아나스타샤는 “정의가 실현돼서 정말 행복하다. 이제 나는 유전자 검사를 위해 러시아로 간다”고 말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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