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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누가 ‘춘마곡추갑사’라 했나? 단풍이 고운 공주 마곡사
[공주=이윤미 기자 글ㆍ사진]깨질듯한 투명한 가을 햇살과 바람이 사찰 마당에 고요히 내려앉은 오후, 마곡사 신도들이 단풍구경을 나왔다. 마치 처음보는 풍경인양 곱게 물들어가는 사찰을 신기롭게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이 천진해 보인다. 맞춰 입은 치자색 배자옷이 가을 빛을 닮았다. 절의 겨울나기를 위해 텃밭에 심은 것들을 거두고 갈무리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다. 고추와 감자가 50박스, 배추가 수천 포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허리를 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사이 짧은 가을 햇살은 사찰 마당을 바삐 가로지르며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충남 공주시 사곡면, 천년 고찰 마곡사의 가을의 아름다움은 단풍이 설치지도, 그렇다고 너무 착 가라앉지도 않은 은은함에 있다. 사찰도 마찬가지다. 애써 단장하지 않는다. 빛이 바래고 금이 갔다고 덧칠하거나 보태지 않는다. 가장 보존이 잘 된 사찰로 꼽히는 이유다. 그렇다고 낡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저마다 나이가 다른 전각과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찌 보면 계통이 없어보이는 건물들이 여기 저기 흘어져 있지만 그 자체로 역사 교과서다. 가령 전각과 어울리지 않는 원나라 형식을 모방한 오층석탑이라든지,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하는 오랜 헛간과 신식 템플스테이, 백범당 같은 게 여기 저기 흩어져 있지만 모나지 않게 서로 어울려낸다. 그 비밀은 다름 아닌 마곡사를 품고 있는 태화산에 있다. 넉넉한 자연이 건물과 건물의 충돌을 보듬으며 그 간극을 메워주고 있음이다.

"마곡사는 한국 사찰의 전통 양식이 그대로 살아있고 자연과 가장 조화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과거에 사찰의 규모가 대단했다고 하는데 발굴은 녹록치 않아요. 지표조사를 하자면 자연을 다 훼손해야 하니까요.” 마곡사 원경 주지스님은 손을 댐으로써 전각이나 자연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했다.

마곡사의 아름다움, 그 비밀=‘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의 풍경은 마곡사요, 가을 풍광은 갑사란 얘기다. 그럼에도 마곡사의 가을이 봄보다 더 좋다는 이들이 많다. 새움이 트는 봄의 생기발랄도 좋지만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고찰과 가을의 시간이 서로 스미듯 만들어내는 무늬와 결 또한 곱고 깊기 때문이다. 전국이 가물어 물소리를 듣기 힘든 때인데도 수량이 풍부한 물을 만난다는 건 마곡사가 보여준 첫 놀라움이었다.

정감록은 “유구와 마곡의 두 물곬 둘레가 2백리나 되니 난리를 피할 수 있다”며, 마곡사를 풍수지리적인 10대 명승지의 하나로 꼽았다. 마곡사 입구, 물길을 옆으로 끼고 걸어올라가는 좁은 숲길은 여느 사찰과 비슷해 보인다. 주차장을 지나 백범명상길과 등산로 팻말과 갈라져 태화산 마곡사라고 쓴 길로 접어들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너른 분지가 형성돼 절터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돌다리를 건너면 예쁜 돌담이 이어진다. 건축물을 받쳤을 석축 위에 예쁜 살색 담을 낮게 얹은 너머로 안채가 보일 듯 말 듯하다. 에워싼 나무의 이마에 단풍이 곱게 들었다. 아직 푸르른 잎들 위에 먼저 붉어져 수줍은 색이다. 돌담 밑에는 들국화가 옹기종기 피어 계절을 알린다. 저 스스로 바람과 햇빛의 기미를 알아채 피어난 모습이 기특하다. 긴 돌담이 끝난 자리에 해탈문이 딱 버티어 서 있다.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에 해당한다. 문 이쪽의 속세와 불의 세계가 문을 사이에 두고 나뉘는 것이다. 고종1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빛바랜 낡은 기둥이 둘러싼 네모진 문 뒤로 색색의 연등길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왠 연등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2018년 한국의 전통산사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기원합니다’고 쓰여 있다. 마곡사는 현재 통도사 등 6개 사찰과 함께 한국의 전통산사로 묶여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다. 

"마곡사는 한국 사찰의 전통 양식이 그대로 살아있고 자연과 가장 조화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과거에 사찰의 규모가 대단했다고 하는데 발굴은 녹록치 않아요. 지표조사를 하자면 자연을 다 훼손해야 하니까요.” 마곡사 원경 주지스님은 손을 댐으로써 전각이나 자연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했다.

마곡사는 구석구석 눈길을 사로잡는 전각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다. 그 중 마곡사의 절경을 꼽자면, 높은 대웅보전 앞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을 들고 싶다. 발 밑에 대광보전의 기와가 장식을 이루고 절벽 같은 아래로 하얀 마당이 펼쳐지며 태화산이 둘러싼 모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다. 거기서 바라다보면 점점이 사람들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대웅보전 옆길로 내려서면 눈 앞에 저수지처럼 너른 계곡이 펼쳐져 저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온다. 넓직한 판석이 징검다리로 놓여있는 계곡을 어른들이 팔짝거리며 건너며 신나한다. 오래전 이 계곡에는 설법을 듣고자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하천만한 물줄기가 산 속에 흐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구비구비 흘러내려 사곡면 마을들과 논밭을 적시는 것이다.

마곡사의 또 다른 매력은 템플스테이다. 대광보전 앞 마당 오른쪽에 마치 고택들이 연이은 듯 자리하고 있다. 절이라기보다 마치 시골 외가댁에 내려온 기분이다. 이곳 돌담 밑에도 보란 듯 하얀 들국화가 피었다.


한국의 전통산사, 세계문화유산으로=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70여개 말사를 관장하는 규모가 큰 사찰이다. 백제 의자왕 때 지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고려에 와 보조국사가 중창하면서 번성했다. 마곡사는 사찰 전체가 보물이다, 보물 7점과 충남 유형 문화재 6점 그리고 충남 문화재 자료 5점이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조선 효종 2년 1651년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됐다. 중수기에는 대장전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래 경전을 모셨던 곳이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임진왜란으로 불 타 없어진 것을 순조 13년 18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내부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특이하게 동쪽을 바라보도록 봉안돼 있다. 또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유형문화재 제191호)가 봉안돼 있다.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삿자리가 깔려 있으며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가 조각돼 있다. 이 삿자리에는 앉은뱅이 전설이 전한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기도 중에 틈틈이 참나무를 이어 앉은자리를 짜며 치성을 드린 덕에 백일 뒤 법당을 나올 때는 자기도 모르게 걸어서 나갔다는 얘기다. 대웅전 안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들을 껴안고 한 바퀴를 돌면 6년을 더 산다는 전설도 있다. 많은 이들이 껴안아 기둥이 반들반들해져 있다.

대광보전 앞 오층석탑은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불린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몸돌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일층 몸돌에는 자물쇠를, 이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을 새겼다.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 장식을 두었는데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원 간섭기에 마곡사가 친원세력의 후원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이자 모든 공간에 부처가 거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고려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가인 김구(1876~1949) 선생의 은거로도 유명하다. 백범당은 김구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은거, 1898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해 수도한 곳이다.

백범당 마당 한켠에는 조국 광복 후 선생이 이 곳을 찾아 대광보전 주련의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呂夢中事)를 보고 감개무량해 그때를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는 원각경에 나오는 이 말이 50년만에 찾은 백범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백범당에는 선생이 즐겨 쓰던 서산 대사의 선시를 적은 휘호도 걸려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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