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나라 경제보다 덩치가 커진 기업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총자산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와 맞먹는 유럽 최대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홀딩스의 본사이전 여부 결정이 임박하면서다. 우리나라도 삼성그룹의 총자산과 매출이 각각 GDP의 30%와 50%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HSBC가 다음달 2일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본사 주소지 변경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29일 보도했다. 지난 4월 HSBC는 런던 본사의 해외 이전 여부를 12월 말까지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만일 이전한다면 1993년 홍콩에서 런던으로 옮긴 이래 약 25년만이다.

HSBC 이사회가 본사 이전을 검토하기 위해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 등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맡겼으며, 일부 이사 몇명은 최근 홍콩을 방문해 현지 법률전문가를 만났다고 전했다.

나라보다 덩치커진 기업…HSBC 본사이전 추진‘英의 딜레마’

그런데 이유가 꽤 납득이 간다. HSBC의 총 자산규모는 2조5720억달러로, 영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맞먹는다. 그런데 이익의 70%는 아시아 시장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HSBC의 자산성장 속도는 영국의 GDP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영국중앙은행 조사결과 2050년까지 영국 은행 자산규모는 현재보다 4배 증가해 영국 GDP의 9배와 맞먹는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 전망도 최대은행 HSBC가 빠지면 달라진다.

번스타인연구소 치란탄 바루아 연구원은 “개별 기업이 해당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년 커진다면 덩치를 줄이라는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HSBC이사회는 향후 수십년에 걸친 세계경제, 규제변화까지 예측해 주소지 변경안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경제 규모 뿐 아니라 보너스 규제 등 세제, 법제까지 검토 대상이다. 이 때문에 영국 재무부는 4월 이후 은행 규제를 완화하는 등 당근책을 내놨지만, HSBC의 마음을 돌리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막상 HSBC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옛 본사가 있던 홍콩은 50년간 중국의 행정편제 적용을 받지 않는 일국양제가 2047년이면 종료된다. 이후에는 ‘중국기업’이 돼야 한다. 캐나다 GDP는 영국보다도 작다. 이 때문에 본사 이전 결정이 내년 초로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