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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한석희] 폐지 줍는 노후 걱정해야 하는 아득한 현실
얼마전 집 사람이 농담조로 건넨 말. “늙어서 폐지 줍게만 하지마” 웃자고 한 말이지만 서글픈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말은 현실이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6%)을 훨씬 웃도는 48.5%에 달하는 노인빈곤율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3중 연금체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애기다.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국민연금 초기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후를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정부의 입 발린 말에 국민들은 안심했다. 그래서 쌈짓돈 같은 돈을 매월 납부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 발린 말은 곧 거짓말이 됐다. 얼마전 모 대학교 교수는 점심식사 자리에서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까지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3중 연금체계의 주춧돌이라는 국민연금은 건정성 악화로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2060년이면 국민연금도 바닥이 난다. 어느 누구도 국민연금이 노후를 준비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26.4%에 불과하다니 말 다하지 않았나. 그 뿐인가. 최근엔 꼭두각시 정치 놀음에 국민연금은 이미 망신창이가 되고 있다.

퇴직연금이라고 있지만 이 역시 기댈 언덕이 되지는 못한다. 한국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고작 18.8%에 불과하다. 영국(49.1%)이나 미국(32.8%), 독일(32.2%)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55세 이상 퇴직자의 96.9%가 일시금으로 퇴직급부를 수령한다고 한다. 퇴직자 10명 중 7명은 퇴직금을 노후준비가 아닌 딴 곳에 쓸 수 뿐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개인연금이라고 해서 사정이 밝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개인연금 가입률은 고작 12.2%다. 암울한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외에 필요한 개인연금의 30% 수준밖에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40세 남자의 경우 개인연금에 매달 75만원을 불입해야 하지만, 실제로 내는 보험료는 평균 21만원에 그친다.

메트라이프생명과 서울대학교 노화ㆍ고령연구소가 발표한 ‘한국 베이비부머 패널 연구 3차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61.1%가 은퇴자금 마련을 위한 계획이 없거나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베이비부머 4명 중 1명은 단일 보장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말 다하지 않았나. 늙어서 폐지 줍는 게 마냥 농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팔청춘도 모자라 육팔청춘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늘어나는 수명에 대한 해답은 없다는 애기다. 정부도 이젠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의 기능 상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한 데 아우룰 수 있는 입체적인 시각으로 노후체계를 다시 그려야 한다. 뜬금없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있지도 않은 철학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안녕한 노후를 위해 정부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이에 대한 제도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게 정부가 할 일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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