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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찰나의 기억’…이글이글 그릴
자동차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핵심 디자인
2000년대부터 브랜드 이미지 각인 본격화



자동차의 첫인상을 좌우하는건 그릴이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다. 첫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전면부의 핵심 디자인인만큼 차 전체 이미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몇몇 브랜드는 새로운 변화를 꾀할 때 그릴 디자인을 매만진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는 요소지만, 그릴을 바꾸는건 얼굴을 고치는 것과 마찬가지라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릴로 브랜드 정체성을 새긴 독일차=그릴은 라디에이터 그릴의 줄임말이다. 엔진룸 내 라디에이터의 냉각에 필요한 공기를 흡입하는 통풍구다. 원래 라디에이터를 가리기 위한 목적의 장치인데, 차의 얼굴을 책임지는 디자인으로 자리잡았다.

현대차의 헥사고날 그릴. 신형 제네시스.

독일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그릴로 브랜드 정체성, DNA를 표현했다. 눈에띄는 그릴로 차 브랜드를 각인시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기아차의 호랑이코 그릴. 신형 K5.

BMW는 신장 모양의 ‘키드니(kidney) 그릴’을 80년 넘게 유지해왔다. BMW는 ‘키드니 그릴=BMW의 DNA’로 보고 전 모델에 같은 디자인을 적용했다. 독특한 디자인 덕에 BMW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BMW의 키드니 그릴. 뉴 750Li x드라이브.

메르세데스-벤츠도 100년 넘는 전통의 그릴을 보유한 브랜드다. 그릴은 평범한 모양이지만 삼각별 엠블럼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최근에는 그릴 내부를 보석으로 장식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디자인해 ‘다이아몬드 그릴’이라고도 불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 미러로 차를 봤을 때 한눈에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보게 하는게 훌륭한 그릴”이라고 설명했다.

(왼쪽)메르세데스 벤츠의 다이아몬드 그릴,더 뉴 제너레이션 CLS 클래스.(오른쪽)인피니티의 더블아치 그릴. Q50.

▶현대차는 ‘우아’ 기아차는 ‘역동적’=몇몇 브랜드는 그릴 디자인 변화로 브랜드 이미지나 위상 변화까지 노린다. 명품이 인정받는 것은 상품에 덧입혀진 고급 이미지 덕분이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톱 5 브랜드에서 보다 상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 브랜드 정체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중적인 차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입지가 구축된 가운데, 고급 차종으로 확장하려면 제품 그 이상의 브랜드 이미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10년간 전면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를 상징하는 ‘육각형(헥사고날) 그릴’, 기아차를 뜻하는 ‘호랑이 코 그릴’이 차에 최종 이미지를 덧씌우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는 점잖고 우아하며 기아차는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톱5에서 점프하려면 상품 말고도 브랜드 전략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그릴 디자인도 패밀리룩 등 브랜드 정체성 강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소형ㆍ준중형ㆍSUV 차량은 기본 육각형 그릴, 중형ㆍ대형 차량은 윗 부분이 조금 더 넓은 ‘윙 타입’ 육각형 그릴을 적용해 차별화하고 있다. 신형 제네시스는 육각형 구조를 제네시스의 고급 이미지에 걸맞게 잘 다듬은 디자인으로 꼽힌다. 올 연말 출시되는 신형 에쿠스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그릴이 도입될 예정이다.

기아차는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 영입 이후 그릴에 대변화를 줘 성공한 케이스다. 2008년 6월 출시한 로체 이노베이션부터 일명 호랑이 코 그릴 적용됐다. 이전에 기아 그릴은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 호랑이 코 그릴로 기아차임을 구분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갈리지만, 적어도 브랜드 각인 효과는 뚜렷하다는 평가다.

(왼쪽)아우디의 육각형 싱글 프레임 그릴. 신형 A6. (오른쪽)렉서스의 스핀들 그릴. ES300h.

▶그릴의 변화, 도약의 계기=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의 상징인 아우디는 원래 투박한 인상이 있었는데, 2003년 르망 콰트로 콘셉트 차량부터 ‘육각형 싱글 프레임’ 그릴을 적용해 호평받는 디자인으로 진화, 도약의 계기가 됐다.

렉서스도 2011년 공개된 콘셉트카 ‘LF-Gh’를 기점으로 그릴을 확 바꿨다. 렉서스가 2010년 리콜 사태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일종의 돌파구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것. 모래시계 모양의 ‘스핀들(spindle ㆍ축) 그릴’로 바꾸면서 렉서스는 밋밋하다는 인상을 지워나갔다. 후쿠이치 토쿠오 현 렉서스 인터내셔널 사장은 당시 도요타 역사상 최초로 디자이너 출신 사장이 됐다. 그는 그릴 디자인 후보 중 가장 반대가 심하고,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채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사즉생 각오로 변화한 뒤, 2011년 글로벌 판매 51만 대에서 2014년 58만 대로 판매량도 상승했다. 

(왼쪽)롤스로이스의 신전 그릴. (오른쪽)고스트 시리즈 II.지프의 수직 그릴.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

▶고장 예방하려…연인 기리며= 롤스로이스의 ‘신전 그릴’, 벤틀리의 ‘매트릭스 그릴’ 디자인에도 유래가 있다. 벤틀리는 고유의 매트릭스 그릴을 적용하는데 벤틀리만의 스포티하면서도 위엄을 갖춘 이미지를 연출한다. 이처럼 구멍이 작고 촘촘한 그릴을 쓰게 된 이유는 과거 레이싱 대회 참가 시 튀는 돌이 그릴 안으로 들어가면 고장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의 신전 모양 그릴은 유독 크게 디자인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릴 위에는 ‘환희의 여신상’이라 불리는 조각이 늘 함께 있다. 이 조각은 롤스로이스의 대주주인 몬터규의 연인 엘리노어를 형상화한 것이다. 엘리노어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그녀를 잊지 못한 몬테규가 조각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유려한 곡선 디자인으로 유명한 인피니티는 그릴에서도 곡선의 미학을 이어간다. 물결이 넘실대듯 곡선으로 이뤄진 ‘더블 아치형 그릴’은 인피니티가 추구하는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윗부분은 전형적인 동양의 다리 실루엣을, 아랫부분은 그 다리가 물에 비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외 볼보차의 그릴에는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선을 함께 넣어 볼보의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SUV를 주종목으로 하는 지프는 세로 선을 굵게 배치해 차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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