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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사철이 제철…미세먼지에도 좋은 ‘묵’의 변주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제철에 맞는 음식이 곧 보약이라고 했다. 특히 건강과 웰빙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제철 음식에 대한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제철 음식을 꼽자면 그 다양한 가짓수에 간혹 헷갈리기도 하지만, 우리 전통 음식 가운데는 사계절 모두에 통할 수 있는 제철 음식도 있다. 바로 묵이다. 

올챙이묵

독립운동가 권오돈 선생은 한 수필에서 “봄이나 이른 여름에는 청포라는 녹두묵이 당철이오. 7ㆍ8월에는 두메산골 사람이 강냉이로 만든 올챙이묵이라는 것이 있고, 가을 되면 도토리로 만드는 도토리묵이 있으나, 겨울철 접어들면 무엇보다도 메밀묵을 제일 즐겨한다”고 했다. 철에 맞게 재료를 바꿔 만들 수 있어 사철이 제철인 음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공주에 간다면 밤묵, 전주에 간다면 황포묵을…

묵의 종류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곡식 또는 나무열매나 뿌리 등을 갈아 죽 쑤듯이 되게 쑤어 식혀서 굳힌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생각해 보면 묵이 될 수 있는 재료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실제 지역에 따라 생선, 칡, 밤, 황포, 천초, 행인(은행) 등을 묵으로 만들어 먹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밤묵은 충청도의 향토음식으로 꼽힌다. 충남 공주지방은 밤나무가 많이 재배돼 밤떡국, 밤다식 등 밤을 이용한 향토음식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밤묵국수가 유명하다.

또 녹두묵을 치자로 노랗게 물들은 황포묵은 ‘전주 팔미(八味)’라 꼽을 정도로 전주 지역의 대표 음식이며, 비빔밥 재료로도 쓰여 전주비빔밥의 현재 명성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부산 기장 지역의 어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멸치 육수에 우뭇가사리를 넣고 고은 뒤 된장과 방아잎 부추 등을 넣어 만드는 기장어묵은 길거리 간식으로 떠오르며 최근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밖에 경북 울진 지역에서는 해초류인 천초를 고아서 만든 천초묵을, 경기지역에서는 겨울이나 이른 봄철 올방개로 만든 올방개묵을 만들어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재료나 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묵은 전분이 ‘겔(gel)’을 형성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음식인데, 겔이 흐물흐물해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묵이 될 수 없다. 가령 감자, 팥, 쌀, 율무 등은 전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묵이 될 수 없다.

묵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을 소개하자면, 재료의 껍질을 벗겨 물에 불린 후 물과 함께 분쇄한 뒤 체에 걸러서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앙금을 먼저 내야 한다. 다음으로 웃물을 따라버리고 약한 불에서 뜸을 들인다. 뜸을 오랫동안 들여야 묵의 질감이 쫄깃해진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묵이 겔 형태로 형성되려면 70℃ 전후의 온도가 최적이라고 한다. 묵을 쑬 때에는 앙금과 물의 비율이 아주 중요한데, 재료에 따라 다르지만 앙금이 1이라고 봤을 때 물은 2~3배 넣어야 한다.

또 녹두묵의 경우 색과 향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녹두 전분을 그대로 쑤면 투명하고 식어서 차게 굳어버리면 흰색이 된다. 여기에 치자 물을 들이면 노랑묵이 나오는데 이를 황포묵이라 하고, 시금치 즙이나 클로렐라 등으로 녹색을, 홍화나 맨드라미 등으로 붉은빛이 도는 묵을 만들 수도 있다.

도토리묵


▶해장에는 녹두, 해독에는 도토리가 그만

묵은 열량 섭취가 높은 현대인에게 다이어트 식품으로 그만이다. 묵의 수분이 80%이고 열량을 내는 영양소는 거의 없어 포만감을 주면서도 살 찌는 데는 기여하는 바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묵의 종류에 따라서 기대할 수 있는 영양 효과도 다르다. 가령 녹두묵의 경우 예로부터 여름철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보양식으로 통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녹두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가라앉게 만들고 소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녹두는 열을 식히는 식품이니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는 음력 3월께에 녹두묵을 먹으며 여름을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더불어 옛조상들은 녹두묵을 술 깨는 데 좋은 최고의 해장음식으로 여겼다. 동의보감에도 녹두는 열독을 없애서 술독을 풀어준다고 했고 중국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녹두탕으로 해장을 한다고 나온다.

도토리묵은 해독에 좋은 식품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중금속 배출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데 이는 도토리 속에 함유돼 있는 아콘산이 인체 내부의 중금속 및 여러 유해물질을 흡수해 배출시키는 데 뛰어난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토리의 떪은 맛을 내는 탄닌도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성분이다. 유해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 가운데 하나인 탄닌은 체내에서 지방흡수를 억제해 준다. 중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도 콜레스테롤 관련 질병이 적은 것은 차에 풍부한 탄닌성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탄닌은 중성지방 분해를 촉진, 혈관 건강을 유지해준다고 한다. 다만 탄닌 성분이 많은 감과 함께 먹을 경우 자칫 지나친 탄닌 섭취로 변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

메밀묵


겨울이 제철인 메밀묵은 신장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메밀에 들어있는 루틴 덕분인데, 메밀의 루틴은 플라보놀 글리코사이드 화합물로 자외선의 피해로부터 식물체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성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몸에 들어가면 모세혈관을 튼튼히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만성신부전으로 진단을 받는 것은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의 모세혈관덩어리인 사구체가 기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므로, 메밀이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루틴은 또 혈관벽에 탄력을 줘서 고혈압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한편, 췌장의 활동을 돕고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강원도 대표 향토음식인 올챙이묵은 옥수수 전분을 이용해 만드는데,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만성신장염, 고지혈증,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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