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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디자인포럼2015]리얼리티‘삼시세끼’…그곳에도‘푸드 디자인’을 입혀라
Re-imagine! 디자인 플랫폼, 창조와 융합의 가치를 더하다
된장찌개·라면은 변함없는 식탁 주인공…변하는 것은 음식 아닌 생활방식
재료 사고, 요리 하고, 접시에 담고…모든 식사행위에 대한 디자인이 중요
음식 패키징도 상품보호 이상의 것…제품 구입하게 만들 설득력 제공해야


케익을 고른다. 생크림과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케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잘랐을 때 무엇이 들었는지, 맛은 어떤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몇 줄의 설명만이 전부다.

한 눈에 케익의 재료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답을 디자인으로 풀었다. 재료를 케이크 위에 시각화시켜 동그란 케익을 원그래프로 만들었다. 각기 다른 색깔로, 다른 크기로 쪼개진 칸들로 각각이 설탕이, 밀가루가, 계란이, 다른 재료들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나타냈다. 데코레이션(decoration)이 곧 정보(information)가 된 셈이다.

디자인의 영역은 무한하다. 지금 당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 앉아 있는 의자, 열심히 두드리고 있을 노트북 자판, 잠을 깨기 위한 커피가 담긴 머그컵에도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인간의 24시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디자인의 재료가 된다. 디자인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한다고 했을 때 푸드(food) 디자이너의 오브제(객체)는 음식이다. 먹는 행위에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은 단순히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통념을 넘어선다. 아무래도 케익에 더 많은 장식을 올리는 대신에 색으로 분할시켜 들어간 재료의 양을 보여주는 디자인은 보기 좋게 하기 위한 접근은 아니다. 그 안에는 재료를 알고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녹아있다. 


푸드와 디자인을 ‘조합’하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가상공간에서의 소통으로 대체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아날로그적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디지털화의 길을 걷고 있다.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의 영역이 불분명해졌고, 그 사이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조차 의미없는 작업이 됐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이 우리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먹는 행위 만큼은 진짜다. 밤새 허기진 배를 아침밥으로 채우고 일과의 피곤함을 점심으로 달래며 저녁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평범한 삼시세끼는 음식을 씹어 삼키는 진짜 행위를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푸드디자인의 개척자이자 인테리어,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마르티 귀세(marti guixe)는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우리의 신체와 상호작용하며 자기평가와 자기재확인의 도구로서 얼마남지 않은 ‘진짜의 것’ 중 하나다”.

재료를 사고, 요리를 하며, 접시에 담고, 그것을 먹는 일련의 먹는 행위를 디자인할 때 그래서 중요한 것이 리얼리티(현실감)다. 사회가 변해도 음식은 바뀌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지만 여전히 우리 식탁의 주인공은 김치와 된장찌개다. 농심의 안성탕면은 변함없이 30년 역사를 자랑하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변하는 것은 생활방식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간편한 만큼 속도가 붙었다. 음식의 영역도 효율적이고 편한 것을 찾는 사람들의 니즈를 피해갈 수는 없다. 넓게 보면 칼로 썰어먹고 손으로 집어먹었던 소시지를 빵 사이에 끼워 ‘핫도그’로 만들어낸 것도 푸드디자인이다.

마르티 귀세의 작업은 푸드디자이너가 가지는 고민과 그에 대한 답을 잘 보여준다. 재료를 시각화한 아이케이크(I-cake) 역시 그 중 하나다. ‘설 수 있는 막대사탕’은 한시도 손이나 입에서 놓칠 수 없는 막대사탕에 삼각대를 세워 막대사탕을 먹으면서도 신체가 자유롭게 했다. ‘타파스-파스타’는 숏 파스타에 롱 파스타를 연결시켜 여러 명이 함께 타파스(식전에 곁들어먹는 에피타이저) 형식으로 나눠먹을 수 있도록 했다. 직사각형의 쿠키에는 여러 방향으로 점선으로 칸을 나눠 1부터 차례로 숫자를 넣어 먹는 이가 어디서부터 깨물어먹으면 되는지 ‘가이드’를 만들었다. 쿠키를 마주했을 때 사소하게 들 수 있는 ‘어떻게 먹어야하지’라는 고민마저도 해결한 셈이다.

푸드의 옷을 디자인하다

겉포장이 전부를 말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맛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에서 패키징의 역할은 한정돼 있다. “이것이 맛있고, 먹으면 행복할 것이다”를 소비자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음식의 옷을 입히되, 사람들이 그것을 맛볼 수 있도록 매력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일은 디자이너의 몫이다. 음식을 해먹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더 익숙한 사회다.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대량생산된 수만가지 식품들을 마주하게 되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매장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은 순식간이다. 패키징은 푸드디자인의 일부분이지만 식품업체의 입장에서는 좋은 식품을 개발해 내놓는 것 이상으로 패키징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패키지 디자인을 담은 책 냠냠(yumyum)의 서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글라스퍼드앤워커(glasfurd & walker)의 포이베 글라스퍼드(Phoebe glasfurd)는 “패키징 디자인이라는 것은 기능과 메시지라는 면에서 균형감을 가져야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욕구(desire)’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패키징 디자인이 당신이 그 상품을 가지고 싶게 하거나, 나누고 싶게 하거나, 보여주고 싶게 만드는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당신을 궁금하게 하는가가 패키징 디자인이 가져야할 고민이다.

대량소비시대, 이제 패키징은 상품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것이 돼야한다. 글라스퍼드는 “똑똑한 디자인은 단순히 상품을 보호하거나 보여주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 이상의 것들을 수행한다”며 “패키징의 형태와 재료들은 상품을 보완해야하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며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사게 할 만큼 설득력있는 이유를 제공해야한다”고 했다.

신세계는 최근 비밀연구소 프로젝트를 통해 자체 브랜드인 피코크(PEACOCK) 브랜드의 ‘엄마기준 뮤즐리북’이라는 상품을 내놨다. 5권으로 이뤄진 북세트 모양의 패키지는 영락없이 ‘요리책’을 떠올리게 한다. 각각의 ‘책’에는 딸기와 비트, 단호박과 복숭아, 흑미와 블루베리 등 5가지의 각각 다른 색감과 영양을 가진 채소와 과일을 첨가한 뮤즐리가 들어있다. 시리얼 박스에 뮤즐리를 담아내는 통상적인 패키징을 넘어 이 뮤즐리북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엄마들이 참고해야하는 영양식이라는 의미까지도 담아낸 셈이다.

셰프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음식의 완성은 플레이팅입니다”.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 스타셰프는 담음새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예쁘고 잘 만들어진 옷이 폼새를 살리듯 상차림에도 어울림이 중요하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요리, 요리의 색감과 어울리는 접시, 접시를 돋보이게 하는 매트, 멋스럽게 놓인 커트러리들은 식사의 맛과 멋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그랜드하얏트서울의 패스츄리 셰프 브렛 뮐러(Brett Muller)는 접시에 요리가 담긴 모습은 곧 고객과 셰프의 ‘첫 인사’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맛을 보기 전 접시 위에 차려진 모양새, 색감, 향 등을 통해 고객은 셰프가 만들어낸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감상하고 공감한다”고 말한다. 뮐러 셰프는 “최근 플레이팅은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한 모던함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플레이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맛, 향, 질감, 색의 조화를 꾸준히 지키는 것은 변함없이 중요하다”고 했다.

잘 플레이팅된 한 접시가 가진 힘을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은 스타일리스트에게 돌아간다. 푸드스타일링은 이처럼 음식에 어울리는 테이블 스타일링과 식공간을 연출하는 모든 작업을 말한다. 즉, 푸드스타일리스트가 행하는 일련의 작업을 관통하는 목표는 ‘아름다움’이다. 요리를 만들고 담아내는 셰프도, 공간을 꾸며내는 스타일리스트도 공통된 고민은 음식의 색감과 모양새의 밸런스, 즉 조화다.

푸드디자인과 푸드스타일링은 혼동되기 쉽다. 구분하기 위해서는 작업의 기초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티 귀세는 “디자인은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먹는지 등 기능적인 부분에도 기초를 둬야한다”고 말한다. 즉, 맛있고 멋있게 먹는 것 외에 먹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불편함, 혹은 필요한 것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는 것이 ‘푸드디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하고, 요리를 먹기좋게 담아내는 셰프의 역할을 ‘디자인’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귀세의 설명이다. “셰프의 작업은 푸드디자이너들이 해결해려고 노력하고 있는 문제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들이 디자이너는 아니다. 푸드디자인은 요리를 현재의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요리의 대체제는 아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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