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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길 근대사’ 걸으면서 역사를 만나고 ‘나’를 되찾게 해주는 책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 바쁜 도시인들이 걸어다닐 기회가 많지는 않다. ‘앞‘만 보면서 달려온 현대인은 걸어봐야 한다. 그래야 ‘옆’도 보이고 ‘뒤‘도 보이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면서 대한민국의 잊혀진 역사를 되새기고 사람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 나왔다. ‘골목길 근대사’(시루)는 길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듯이 역사를 산책한다. ‘골목길 근대사‘는 역사 인식을 일깨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되찾아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여가학자 최석호, 박종인 기자, 종교학자 이길용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이들은 ‘역사산책’이라는 콘셉트가 자칫 무거운 역사지식 전달에 치우쳐 산책이 주는 재미를 놓칠 것을 우려해 수위를 조절하는 데 애썼다. 자유여행과 역사해설의 중간쯤, 역사를 만나 사유하고 걸으며 ‘나’에게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독자는 골목골목 이 땅에 서려 있는 우리 역사를 걸으며 그 역사현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자신과 연결돼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황후의 정릉이 원래 있던 곳을 후세 사람들이 정동이라 불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왕조 600년 도읍지의 권력 중심부로 영욕의 시간을 지나온 정동은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버텨낸 격동하는 근대사의 주역이자 현장이었다.

정동에는 무력하게 국권을 침탈당한 근대사의 아픔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라를 넘겨준 ‘을사늑약’ 조약을 체결한 ‘중명전’, 임금이 왕궁을 버리고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친 ‘아관파천’의 현장 러시아공사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해방 후 안두희의 총탄을 맞아 비명에 가신 김구 선생의 ‘경교장’, 그리고 구한말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주역 외국 선교사와 외교관들의 주 무대가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정동에서 가까운 광화문 네거리에 매년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인 2월 8일이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와 연인들의 가슴을 적신다. 이문세가 부른 명곡 ‘광화문 연가’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 노래는 세월의 흐름 속에 모든 게 변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을 노래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광화문 덕수제과에서 여고생과 미팅하던 시절이 생각나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광화문 사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되살아난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다정히 걷고 있는 연인들의 눈앞에,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정동교회 바로 옆 카페에, 서대문에서 광화문에 이어진 빌딩 숲 사이에서, 역사의 영광, 분노, 좌절,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걸 ‘골목길 근대사’의 저자들은 진지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밖에도 ‘골목길 근대사’에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인 조선중화가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서촌, 그리고 나라 잃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힘든 시절을 살아 견디어내고 마침내 되찾은 나라에서 문화보국을 위해 힘쓴 동산(성북동), 한 많은 민초들의 삶을 흥과 예로 승화해낸 개항장 목포의 눈물, 청관거리, 왜관거리의 전통이 남아 피난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품은 국제도시 부산의 개항장, 사랑으로 용서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을 신앙심으로 이겨낸 천사의 섬 신안 증도까지 우리 근대사의 아픔과 진실을 전하는 역사와 사람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 순서에 관계 없이 이 책에 소개된 어느 골목길을 가든 그 곳에서 그곳만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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