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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노동의 그늘] ‘겨우 최저임금 주면서’…웃음 강요당하는 알바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감정노동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텔레마케터, 승무원, 간호사 등이 아니더라도, 서비스업에 시간제로 종사하는 아르바이트생도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오히려 짠 시급과 열악한 근무환경, 불안정한 고용조건 등에 비해 과다한 서비스정신을 요구받아 이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매달 한 차례씩 모든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서비스 교육을 시행한다. 


영화관 관리자는 아침 7시에 알바생을 불러모아 짧으면 40~50분, 길면 한시간 반씩이나 인사하는 법, 고객을 대하는 방식 등을 교육한다. 아르바이트 일정표가 오후 시간대로 잡혀 있는 이들도 일찍 나와 교육을 받고, 알바 시간이 시작할 때까지 집밖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잦다.

만약 알바생이 사정이 있어 서비스교육에 출석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다음 달 시간표를 짤 때 ‘이 날만 빼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패널티가 주어진다. 혹은 다른 알바생과 일정을 맞교환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다. 시간표 짜는 권한이 있는 매니저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폭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영화관에서 일했던 황모(20ㆍ여) 씨는 “고객 뒤에서는 매니저가 군기를 잡고, 고객 앞에선 웃는 얼굴로 대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며 “꼴랑 최저임금을 주면서 알바생에게 엄청난 서비스 정신을 바란다는 게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또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장모(30) 씨도 4개월 만에 곧 일을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 초반 일주일은 서비스 교육을 받는 기간이었다. 교육기간이라고 시급을 덜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는 두 배였다.

장씨는 “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받는 것,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 일이 생기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등을 매니저 앞에서 계속 연습해야 했다”라며 “이후엔 선배와 2인 1조로 함께 주문을 받으러 다녔다”고 회상했다.

‘음식이 빨리 안 나온다’, ‘음식이 너무 짜다’ 라는 등의 손님 불만에 대처하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장씨는 “손님이 이상한 걸로 트집을 잡더라도 항상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했고 굴욕적인 일들을 감수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손님을 왕처럼 받드는 한국 서비스업계 문화가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릎을 꿇고 주문받는 것은 너무 과도한 서비스”라며 “기업들의 고객 최우선 방침에 더해 돈을 쓰면 ‘돈값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스스로 갑이 되려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상현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고객만족’이라는 문화가 만들어 낸 그늘이 바로 감정노동이다”라며 “웃는 낯으로 고객을 대해야만 하는 이들을 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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