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슈퍼리치섹션 민상식 기자ㆍ홍예지 인턴기자] 총 자산 약 80조원, 한 때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부호 순위 1위를 차지했었을 만큼 거물이지만 국내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 있다. 멕시코 ‘통신 거물’ 카를로스 슬림 엘루(Carlos Slim Helu) 텔맥스 그룹 회장이다. 그의 재산은 재산 771억 달러(약 80조원)로 2015년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갑부 2위에 올랐다. 국내 최고 부호로 꼽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보다 7배 정도 부자다.
그는 ‘멕시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멕시코 GDP(국민총생산)의 5%가 슬림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회사와 그 종업원들의 손에서 나온다. 한 때는 맥시코 GDP의 11%가 슬림의 그늘 아래 있었다. 슬림은 아메리칸 모빌, 카르소 글로벌 텔레콤, 텐셀 등의 기업을 포함한 텔맥스 그룹을 경영하며 멕시코 통신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슬림 제국’은 금융업, 건설업, 담배, 레스토랑 체인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업종의 다양한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서양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재벌’이다. 덕분에 멕시코엔 “단 하루도 카를로스 슬림의 돈이 불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계 2위 정도되는 부자지만 그의 생활은 다른 부자들에 비해 세간에 덜 알려져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일상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가 하나 생겼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뉴욕의 맨션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맨해튼 한 가운데 위치한 8층짜리 맨션으로, 총 면적 20000㎡(6050평)에 25개의 방에 욕실 14개로 이뤄진 건물이다. 지하에는 주치의 사무실까지 완비돼있다. 맨션의 이름은 ‘벤자민과 사라 듀크의 집(Benjamin N. and Sarah Duke House)’이다.
1901년에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이라 가격이 더욱 높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녀의 세번째 남편 마이클 토드의 집이었던 이력도 있다. 건축 당시 빨간 벽돌과 석회석을 이용한 당시의 최신 공법을 이용해 견고할 뿐 아니라 세련된 외관덕에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현대의 건축물과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평을 얻고 있다. 현재 맨션 뒤편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들어섰으며 센트럴파크가 내다보이는 경관을 자랑한다.
지난 2010년 슬림은 이 건물을 약 4000만 달러, 우리돈 500억원 정도에 매입했다. 당시 이를 두고 여러가지 관측이 오갔다. “그가 미국에서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는 설부터 “슬림 정도의 갑부라면 뉴욕에 집 한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 ‘뉴욕 양키즈(NewYork Yankees)’의 경기를 관전한 뒤 이 집을 주로 애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키즈의 오랜 팬인 그는 수시로 양키스타디움의 박스를 찾아 열렬히 경기를 응원해왔다.
그는 집의 매매 가격으로 8000만 달러를 불러놓은 상태이다. 구매가격보다 두배 높은 수준이다. 이때까지 이 맨션의 내부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그는 대리인을 통해 내부사진을 공개했다. 프랑스 르네상스 풍의 유려한 인테리어와 방마다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러운 구조다. 시세보다 높게 책정된 탓에 아직 구매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지만 현재 매물로 나와있는 뉴욕 고급 부동산업계 물건 가운데에는 가장 매력적인 물건 중 하나라는 평가다.
사실 슬림에게는 고향인 멕시코에 집이 한채 더있다. 수도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스 데 채플테펙(Lomas de Chapultepec)’에 위치해있다. 침실 6개가 전부인 이 집에서 슬림은 40년째 살고있다. 베일에 싸여있는 갑부답게 집 내부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그가 이집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내와의 추억과 젊은 시절이 담겨있기 때문일 터다. 그는 소마야 도미트(Soumaya Domit)와 1967년 결혼했다. 그의 회사 중에는 부부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카르소’라는 회사도 있다. 슬림은 그녀를 ‘인생의 단 한사람(love of my life)’이라고 말하며 표현한다. 실제로 1999년 사별 후에도 다른 갑부들이 흔히 겪는 스캔들 한 번 내지 않았다. 아내 사랑 못지 않게 가족에 대한 애착도 유별나다.
‘가화만사성(모든 일은 가정에서 비롯된다)’을 중요시해 월요일마다 가족 회의를 열고, 형제간 재산 다툼을 피하려 6명의 자녀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줬다. 그는 인생 최고의 가치는 가족과 좋은 친구를 두는 것이라고 늘 강조한다. 그에게 비즈니스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신뢰의 산물인 것이다. 슬림의 이러한 철학은 그가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
이 집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멕시코의 고향집과도 불과 3마일 떨어져있다. 슬림이 마음의 평온을 찾는 곳인 셈이다.
물론 집 자체는 평범하지만은 않다. 집이 위치한 로마스 데 채플테팩은 1930년대부터 멕시코 부자들이 큰 맨션 하우스를 집고 모여 살고 있는 멕시코 시티의 ‘부촌 중에 부촌’이다. 이웃들이 모두 멕시코의 거부들인 셈. 사업에서 특히 더 인맥을 중시하는 게 멕시코 문화다. 이곳에서 형성한 특별한 커뮤니티는 슬림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슬림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가진 돈에 비해서는 화려한 삶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슈퍼리치의 필수품’이라 여겨지는 요트도 없다. 회사에서도 다른 경영진과 비서를 공동으로 쓰고 보좌진도 따로 두지 않는다. 운전도 스스로 한다. 알려진 ‘애마’는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와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스퍼다.
대신 고전 명화와 조각품을 수집하는 데에는 열정적이다. 그는 로뎅, 르누아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다. 2011년 3월에는 멕시코시티에 아내의 이름을 딴 ‘소우마 박물관’을 건립해 이 작품들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