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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을 알려주마]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평범한 99%’가 주인공이 되는 이유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TV 밖 시청자, 즉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프로그램은 나날이 늘고 있지만, 제한된 방송시간에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듣는 프로그램’을 자처해 애초의 의도를 잘 살리는 프로그램이 있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걱정말아요 그대’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설 당시 파일럿으로 출발, 시청자의 호평을 받으며 안방으로 안착했다. 일요일 밤 9시 45분 방송되기에 동시간대 경쟁자들이 쟁쟁하다. KBS 2TV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비롯해 주부 시청자를 장악한 MBC와 SBS 주말드라마 ‘애인 있어요’까지 상대한다. 시청률은 매회 2%대 수준이지만 시청자의 공감은 유난히 높다. 

보도국 제작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매회 연예인이 특별출연하고 고정 게스트로 최진기 오마이스쿨 대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이 돌아가며 등장한다. 정작 이 무대의 주인공은 방송에선 소외됐던 ‘방청객’이다. 평균 400명에 달하는 방청객은 기존의 TV 프로그램에서와는 달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매회 정해진 주제에 맞게 방청 신청을 하고 모인 자리에서 MC를 맡고 있는 김제동은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다년간 완판 신화를 달성한 토크콘서트의 진행자답게 카메라 밖에 있던 시청자를 금세 주인공으로 만든다. 


연출을 맡은 이민수 PD는 ‘톡투유’에 대해 “듣는 프로그램, 무대가 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배우 임수정, 조재현, 가수 김원준, 개그우먼 안영미 등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할지라도 이 PD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주인공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매회 주제에 맞는 사람들을 섭외하지만 엄청난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진행되는 4시간 가량의 녹화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던 시청자, 즉 평범한 일반인이다.

프로그램은 여기에서 독특한 방향성이 생겼다. 이민수 PD는 “‘톡투유’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말했다. “코칭, 멘토, 무턱내고 던지는 응원”이다. 보도국 제작에, 다큐 PD가 만나니 예능 프로그램이 다루기 힘든 포괄적인 주제(폭력, 선택, 공포, 스트레스, 일탈)를 던진다. 방송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질 수 있는 계기다. 고정 게스트로 자리한 최진기 강사는 이를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정재승 교수는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송길영 부사장은 통계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방청객의 고민을 분석한다. 이 과정에선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코칭’,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려는 ‘멘토’로서의 발언은 나오지 않는다. 무작정 ‘힘내’라는 응원도 하지 않는다. 분석과 사례의 제시만 있다.

‘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지난 방송에서 한 여성 방청객이 “남편이 도로 위에서는 유달리 화를 참지 못 한다”며 사회문제로도 대두된 ‘로드 레이지’ 현상을 언급하자 최진기 강사는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찾았다. “도로만큼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였다. 버스, 택시, 소형차부터 고급 외제차가 한 도로 위에서 움직이는 풍경을 언급하며 양극화가 고착된 사회 분위기가 도로 위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니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서 불공정, 불합리를 체감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민수 PD는 프로그램의 이 같은 방향성에 대해 “사회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자연과학적인 존재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갈 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고민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으로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나 생각의 포인트를 주는 정도로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동의 톡투유’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한다. 이 PD는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함께 나누고 싶어하지만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1%다. 그 1%의 목소리가 90%가 동조하고 9%가 따라간다”며 “주류의 목소리가 거세진 사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목소리가 작아 말해도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끌어낸다”고 말했다.


‘김제동의 톡투유’는 드라마와 예능을 아울러 나타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TV콘텐츠는 주인공 한두명의 성장 스토리가 아닌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트렌드가 변화한다”고 말했다. 

그 정점에 있던 콘텐츠가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면 ‘김제동의 톡투유’의 경우 토크쇼로 주목받는 스타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방송 콘텐츠로서도 유의미하다. 드라마는 한 명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명을 한 시대의 주인공(SBS ‘육룡이 나르샤’)으로 세우고, 예능 프로그램은 1인 스타 지상주의에서 다수의 인물을 등장시켜 노래(복면가왕)하고 게임(런닝맨, 1박2일, 무한도전)을 한다. ‘톡투유’는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줬다.

모두가 주인공인 시대에, ‘나’와 ‘당신’이 주인공이 된다는 기획의도가 잘 살아난 덕에 프로그램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녹화에 수용할 수 있는 방청객 숫자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청자가 방청 신청을 한다. ‘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지난 11일 방송의 녹화를 앞두고 일부 시청자들은 “‘톡투유’ 방청의 벽이 가장 높다”는 사연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입소문이 나며 장소 협찬도 적지 않게 들어오지만,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을 피한다. 또한 ‘톡투유’의 무대가 된 공간의 조직원을 무리하게 수용하지도 않는다. 방청석의 일부를 채운 특정 사람들로 인해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제작진의 판단 때문이다. 이 PD는 “‘톡투유’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일뿐 누군가의 목적이 되는 공간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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