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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9돌 한글날③] 아싸, 츤데레, 엄카…‘언어파괴 전당’ 된 대학
[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 상황 1. 시험기간 중 나누는 대화

“나 오늘 혼밥” “아싸냐 ㅋㅋ” “난 도서관 메뚜기” “도자기 개많아” “이번학기 유B무환”

# 상황 2. 친구와 연애상담 중 나누는 대화

“짝녀한테 개까임” “국문과 존예” “얼굴 빻아서 그랬나?” “쿠크깨졌어”


오는 9일은 569돌을 맞은 한글날이다. 하지만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의 한글은 이질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이젠 서로가 외래어처럼 느껴지는 현실이다. 지성인이란 대학생들의 한글 파괴 현상도 심각해진 상태다. 반대로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요즘이다. 이런 사실들을 세종대왕은 아실까….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모습. 헤럴드경제=박현구 기자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 학생들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다.

‘혼자 먹는 밥’을 의미하는 ‘혼밥’이나 아웃사이더를 소리나는 대로 줄여 쓴 ‘아싸’는 이미 취업에 매진하느라 혼자가 된 대학생들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하지만 ‘얼굴이 못생겼다’는 뜻의 “얼굴 빻았다”나 ‘쿠크다스(과자)처럼 마음이 깨져 아프다’는 의미의 “쿠크 깨졌다”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용어는 기성세대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여기에 ‘존예’나 ‘개극혐’처럼 단어마다 접두어처럼 붙어있는 욕설은 대학생들의 저급한 언어파괴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근 이처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언어파괴가 도를 넘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쓰는 용어를 대학에 와서도 그대로 쓸 뿐 아니라 욕설을 섞어쓰거나 일본어 잔재가 남아있는 말을 그대로 쓰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사진은 한 대학 도서관 전경으로, 기사내용과는 무관.[사진=헤럴드DB]

최근 이처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언어파괴가 도를 넘고 있다.

대학 온라인 게시판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대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기존 한글의 문법와 뜻을 모두 뛰어 넘는다.

중고등학생들이 쓰는 용어를 대학에 와서도 그대로 쓸 뿐 아니라 욕설을 섞어쓰거나 일본어 잔재가 남아있는 말을 그대로 쓰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각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의 취업관련 게시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조어는 최근 취업의 어려움을 냉소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노오력(노력의 은어 표현)’ ‘흙수저’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 등은 이미 20~30대 전반에 대중화된 용어다.

문제는 연애게시판이나 익명게시판에 난무하는 외계어들이다. ‘인생짤’ ‘심쿵’ ‘핵꿀잼’ ‘개이득’ ‘케미’ ‘쉴드치다’ ‘츤데레(쌀쌀맞게 굴지만 사실은 따뜻한 사람)’ ‘엄카(엄마카드)’ 등 영어와 일본어를 조합한 후 우리말까지 합쳐 만든 신조어는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일각에서는 신조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세대 간 소통을 어렵게 하고 우리말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상당수의 신조어가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어 정서적으로 비하나 차별 등을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아이엄마’를 의미하는 말로 변질된 ‘맘충‘처럼 혐오적 의미의 신조어가 대중화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이런 신조어 사용에 부정적이지 않다. SK텔레콤 캠퍼스 리포트가 20대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절반 가까운(45%) 대학생은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 마땅한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신조어를 사용한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60% 가량은 신조어 사용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외에서도 이미 말을 줄이는 신조어를 쓰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신조어의 등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세대 간 소통단절’이라는 우려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얘기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연희(27ㆍ여) 씨는 “지나치게 욕설이 많은 신조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쓰지 않게 된다”며 “기성세대가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는 이런 용어를 쓰게 된 배경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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