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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당신의 흡연이 당신의 유전자를 바꾼다
‘물려받은 형질은 고정된 것’ 틀 깨고
행동으로 바꾼다는 ‘후성유전학’ 증명
희귀 유전병 환자들의 사례 바탕
미래 세대에 건강 새 패러다임 제시


# 영국과 캐나다에서 한 그룹의 연구자들이 일란성 쌍둥이를 다섯살 때부터 연구했다. 이들은 완전히 동일한 DNA를 가졌고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었다. 쌍둥이가 열두 살 됐을 때 다섯살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놀랄 만한 후성유전학적인 차이가 나타났다. 

쌍둥이 중 집단 따돌림을 당한 한 명에게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불쾌한 상황에 노출됐을 때 훨씬 낮은 코티솔 반응을 보인 것.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코티솔 반응이 낮은 건 반대되는 결과처럼 보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과량의 코티솔에 노출된 나머지 생리적 반응이 둔화된 것이다. 이는 순간적으로는 지속적 집단 따돌림을 견디는 것을 도와주지만 우울증이나 알콜중독 같은 심각한 심리학적 질병을 일으킨다.

유전에 대한 일반의 지식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형질 그대로 고정된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곱슬머리나 발가락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신 진화의학,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유전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뀐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샤론 모알렘 박사는 화제의 책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김영사)를 통해 지금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유전자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쌍둥이의 예처럼 왕따와 같은 정신적 트라우마 뿐 아니라 불안감이나 행복도 유전자를 변화시킨다.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에서 저자는 유전자가 우리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소한 행동이 나를 바꾸고 심지어 대물림된다는 낯선 후성유전학에 대해 저자는 의구심을 풀 만한 다양한 예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가령 일벌과 여왕벌은 똑같은 유전자를 가졌지만 애벌레일 때 로얄젤리를 많이 먹은 애벌레는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여왕벌이 된다. 또 애벌레를 키우는 육아벌과 채집벌의 경우 육아벌을 숨겨놓으면 채집벌이 육아벌 역할로 전환, 다른 유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한 예다.

타고난 유전자는 같지만 먹는 것, 행동방식, 환경에 따라 발현 유전자가 바뀌는 것이다. 염기서열을 바꾸지 않고도 DNA를 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인 메틸화는 세잎 클로버 모양의 수소와 탄소 화학물이 DNA에 붙음으로써 세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이었는지 프로그램하는 유전적 구조를 변경한다. 이런 ‘메틸화 표지’는 유전자를 켜거나 끔으로써 암과 당뇨, 선천적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 후성유전체는 우리가 물려받은 DNA와 마찬가지로 전혀 정적이지 않다. 우리가 유전자에 하는 일에 따라 바뀐다. 특히 메틸화와 같은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우리가 영향을 끼치기가 놀랍도록 쉽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DNA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일상에서 우리는 유전자를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항공여행 도중의 방사선 노출이나 선텐 중 자외선 노출, 칵테일 속의 알코올, 담배 연기 속의 화학 잔여물, 개인용품 속에 들어있는 살충제나 화학물질들은 모두 DNA를 손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다.

저자는 그동안 진료해온 희귀 유전병 환자들의 사례와 그만의 놀라운 최신 유전학 연구 지식을 바탕으로 유전과 질병, 건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유전자가 우리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다.

가령 흡연자의 경우 대체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데 이는 유전자 발현과 관련이 있다. 우리 몸에는 많은 종류의 유해물질을 분해하는 CYPLA2유전자가 있는데 담배를 피우면 이 유전자가 켜진다.

이 유전자가 많이 켜질수록 더 많은 커피 속의 카페인을 분해할 수 있게 된다. 흡연을 하면 몸에서 카페인을 분해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느린 대사자도 카페인을 빨리 대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피우는 것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같은 유전체를 물려받고 심지어 음식도 비슷하게 먹는 일란성 쌍둥이를 통해 퍼즐의 중요한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일이다. 상하이 교통대학의 과학자들이 최근 영양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비만연구에 따르면, 175kg 정도의 치명적인 비만인의 경우 장속에 엔테로박터 균이 전체 박테리아 중 35%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이 균에 감염된 쥐를 대상으로 비만 환자가 먹었던 것과 비슷한 고지방 음식을 섭취하게 한 결과, 이들은 당연히 비만쥐가 됐다.

하지만 엔테로박터에 감염되지 않은 대조군의 생쥐들에선 다른 일이 벌어졌다. 똑같이 고지방 음식을 먹었음에도 젓가락처럼 마른 상태 그대로였다. 미생물도 유전체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비누나 샴푸, 심지어는 치약 같은 무차별적 항박테리아 제품에 대한 대체품을 찾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수많은 희귀질환은 유전자가 우리 몸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책은 우리의 독특한 유전적 유산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내 일상을 잘 설계하면 유전적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저자의 유머러스하고 친절한 설명과 긍정의 글이 자기계발서처럼 쉽게 읽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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