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1396년(태조5년) 도성 축조 시 건립돼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로 사용됐다. 하지만 1416년(태종16년)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돼 통행이 금지됐으며, 이후 1506년(중종1년) 다시 문을 열어 통행이 가능해졌다.
서울 창의문 |
1623년(인조1년) 인조반정 때는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기도 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에 타 없어졌으나 1741~42년(영조17~18년) 중건됐다. 이때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문루 내부에 걸어놓았다.
서울 창의문 현판 |
육축(성벽)은 숭례문, 흥인지문처럼 길고 네모난 장대석으로 축조했고, 내부에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시설을 설치했다. 북쪽의 등성시설은 ‘ㄷ’자형의 일반적 형태지만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해 만들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며, 여장(담장)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이 없는 전돌로 축조돼 있다.
문화재청은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이라며 “문루는 임진왜란 이후 18세기에 중건돼 큰 변형 없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도성 문루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서울 창의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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