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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을에서 답을 찾다] <4> 1지붕 92가족 '신정도시마을' “어린이도서관 통해 부모 유대도 돈독”

주민제작 책장·기부도서 비치
SH공사 마을상담가 파견등 지원
‘놀고있는 공간’서 ‘노는공간’으로



처음엔 휘트니스 공간이었다. 33㎡ 남짓한 공간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 웃음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이 아파트에 첫 입주가 시작된지 11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입주민이 돈을 모아 운동기구를 채워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운동기구가 1~2만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빈 공간으로 두기는 너무 아까웠죠.”

신정도시마을 아파트 주민들이 어린이도서관에서‘ 리본공예’를 배우고 있다.

돌이 막 지난 둘째 아이를 안고 있는 이정윤 씨가 말했다. 죽어 있는 공간은 아파트 6층 뿐만 아니라 7층에도 있었다. 이 씨는 놀고 있는 공간을 제대로 된 ‘노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입주민대표가 적극 지지했고 특별히 반대하는 입주민도 없었다.

이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는 SH공사는 마을상담가를 파견했다. “이 아파트에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요.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아파트여서 부모나 아이의 나이대가 비슷하고 가정형편이나 생활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죠. 공통의 관심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마을상담가 강미애씨가 말했다. 강 씨는 ‘코디 언니’로 불리는 마을공동체 전문가다. 서울시에서 교육을 받고 구로구에서 3년간 활동하다 지난해 말부터 SH공사 소속 마을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SH공사는 올해부터 신규 입주하는 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신정도시마을’(양천구 신정3동)이 1호 케이스다. 이 아파트에는 신혼부부 92세대(미입주 8세대)가 살고 있다.

이 씨가 기획한 마을공동체 ‘어린이도서관’은 올해 초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부모커뮤니티 분야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사업비 200만원을 지원하고 심사를 거쳐 최대 3년간 보조금을 지원한다.

이 씨는 양천구 등 각종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책을 기부 받아 도서 1000여권을 마련했다. 책장은 재활용 가구와 목재를 활용해 이 씨의 남편이 제작했다. 도서관 안쪽에는 미끄럼틀과 장남감으로 실내 놀이터를 꾸몄다. 7층 비어있는 곳은 ‘엄마들의 수다’ 공간인 카페로 만들었다. 그렇게 ‘1지붕 92가족’ 신정도시마을 마을공동체가 탄생했다.

실제로 활동하는 세대는 25가구다. 이들은 별도의 회비를 내면서 참여하고 있다. 각종 행사 때는 이보다 더 많은 세대가 참여한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프로그램은 이 씨가 1년 계획을 짠 뒤 그때 그때 입주민의 의견을 물어 진행한다.

가장 큰 변화는 ‘공동체 회복’이다. “이 아파트에는 아이들이 많지만 층간소음 문제는 거의 없어요. 윗집에 누가 사는지를 다 아니까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죠.” 어린이도서관 맞은편 624호에 사는 주부가 말했다. 주로 음식이나 식기구를 조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놀이터에 가면 아이랑 둘이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어요. 이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만나도 서로 인사하고 얘기하고 조용한 날이 없죠.” 아이를 안고 있는 322호 주부가 말했다. 322호는 예쁜 글씨 솜씨를 뽐내는 ‘손글씨 전문가’다. 어린이도서관 간판부터 각종 행사 홍보물은 322호가 제작한다.

어려움도 있다. 도서관 환경이 열악하다. 당장 겨울이 문제다. 시멘트 바닥에 유아용 매트만 깔아 놓은터라 난방시설이 절실하지만 서울시에서 받은 보조금은 시설투자를 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회비로 난방시설과 같은 큰 비용을 충당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서울시 예산을 쓰다보니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업무도 많다. 전업주부로서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씨는 ‘의무사항’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한테 ‘교육 받으러 와라’, ‘지출 내역 보고해라’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영수증도 단돈 1원까지 다 맞춰야 해요. 이런 부분을 좀 유연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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