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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일베’가 점령한 SBS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김성진=일베 사진의 치명적 매력에 빠진게 아니라면, SBS 높은 분들, 신경 좀 쓰시죠?

고승희=이젠 양치기 소년…지상파 방송사의 총체적 안일함을 보여주는 사례

이혜미=일베 인증 이미지 족족 찾아쓰는 것도 재주

정진영=이쯤되면 상습범에 확신범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방송되지 말아야할 효과음이 어떤 이유로든 전파를 탄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8뉴스’)

“프로그램 책임자에 대한 징계절차 중이다. 다중점검체계를 갖추겠다.”(‘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급하게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자료에 대한 검증이 소홀했다.”(‘한밤의 TV연예’)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습관’이라고 했다.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몇 차례 징계도 받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지난 2013년 이후 지상파 방송 3사를 습격했다. SBS는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통틀어도 지겨울 정도로 사고가 잦았다. 당연히 시청자도 이젠 고의성을 의심한다.


2013년 8월 20일 SBS ‘8뉴스’에선 지상파 방송3사 메인뉴스로는 처음으로 ‘일베’에서 만든 이미지를 노출하는 방송사고를 했다. 후쿠시마산 가자미류 방사능 검출량 그래픽에서 난데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 사진을 합성한 이른바 ‘노알라’ 이미지가 버젓이 등장했다.


이후 SBS엔 ‘일베’ 귀신이 붙은 듯 수차례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지난 2년간 총 7번의 ‘일베’ 관련 방송사고를 냈다. 그 가운데 4번은 SBS 메인뉴스인 ‘8뉴스’(▶ 2013년 9월 27일, 연세대학교 로고 ▶ 2015년 5월 24일, ‘관광버스에서 술 마시고 춤판...처벌은 기사만’ 리포트에서 일베에서 만든 음악을 5초간 방송 ▶ 2015년 7월 30일, ‘헌재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 실명제 합헌’ 리포트에서 헌법재판소 로고)였다. 3번은 예능(▶ 2014년 3월 2일 ‘런닝맨’, 고려대학교 로고 ▶ 2015년 9월 16일 ’한밤의 TV연예‘, 영화 ‘암살’의 영화 포스터)과 교양(▶2014년 10월 16일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신윤복의 단오풍경)을 아울러 등장했다.


2014년 6월 16일엔 ’SNS원정대 일단 띄워‘에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명소 예수상 대신 노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이미지를 넣은 자막을 삽입했다. 시청자는 의심했으나, 제작진은 “노알라 이미지와는 전혀 관계 없는 친근하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해명했다. 비슷한 시기 예능 프로그램 ’매직아이‘에선 노 전 대통령의 실루엣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제작진은 함구했다.

두 번의 ‘미수’까지 포함하면 총 9번의 ‘일베’ 논란이다. 워낙 빈번하게 빚어지는 방송사고인지라 시청자는 ‘의도적’이라고 조롱하고, ‘일베’에선 ‘또 해냈다’며 환호한다. 시청자가 ‘일베’ 방송사고를 지적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해당 사례에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일베’ 커뮤니티가 가진 특성에서 비롯한다. 특정 집단, 지역, 대상에 대해 노골적인 인신공격 등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어떤 집단과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것을 거짓으로 포장해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선 사회범죄이자 흉기”(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라고 말한다.

SB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커뮤니티에서 제작한 이미지 등만 기가 막히게 찾아내 7차례나 방송사고를 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SBS 홍보팀에선 제작진의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해명과 사과는 한결같다. 사고 이후엔 ‘책임자 징계’는 물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자사 자료만 쓰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이 과정에서 제작진의 치명적인 결점들이 노출됐다. 방송 제작자로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없이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는 점, 사고 발생 이후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시스템 구축을 했다 하더라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기야 “급하게” 찾다가 “자료 검증에 소홀했다”는 실소가 나오는 해명까지 전달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사의 안일한 대처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자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하나 제작진은 지키지 않았다. 시스템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선 강력한 점검이 필요하나 회사 차원의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또한 “속보성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성이다. 속보성이 그릇된 정보 전달의 면피가 돼선 안 된다”며 “시청자의 입장에선 잘못된 정보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재난상황이 아님에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에 논리의 정당성은 없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SBS의 한 관계자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했어야 하는데 SBS뿐 아니라 방송사에서 빚어지는 일베 사고엔 제작진도 느슨했다는 문제가 있다. 재발 방지의 의지는 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자성했다.

내부에선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만, 일베 방송사고에 대해선 너무 크게 부각되지 않길 바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베 커뮤니티가 방송사에서 빚어지는 사고를 자신들의 조직을 알리는 ‘홍보성 도구’로 활용”(최진봉 교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베 게시판엔 SBS 건물 내부에서 찍은 인증샷이 올라오고, 비슷한 사고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전사’라고 찬양하는 등 자신들의 업적을 전시한다. 심지어 “일베와 관계도 없는 기자나 방송국 관계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기네들의 전사라고 수차례 글을 올려 소송까지 갔던 사례가 있었다. 일베가 부각될수록 더 이슈가 만들어지니 잠잠하게 넘어가기를 바라는 측면이 안팎에서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 교수는 그러나 “나쁜 일이 벌어진 상황을 쉬쉬하며 넘어가는 것이 문제해결 방법은 아니다. 도리어 부작용이 발생한다. ‘일베’와 얽힌 방송사의 노출사고 등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뿌리뽑아야할 문제다. 이 과정을 통해 근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수차례 징계를 받았으나 최근 ‘한밤의 TV연예’ 방송사고 역시 심의에 올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해당 방송에 대해 의견진술(방송심의규정 중 객관성(제14조), 명예훼손 금지(제20조), 품위유지(제27조)를 위반)을 결정했다. 제작진의 의견을 들은 뒤 징계수준을 결정하나, 이는 중징계를 예고하는 사전단계다. 이 건을 포함하면 SBS는 ‘일베’ 관련 방송사고로 올해에만 3번째 제재(SBS ‘8뉴스’ 5월ㆍ7월)를 받게 됐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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