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운드·모씨·센티등
익명 SNS에 모여 따뜻한 위로
읽다보면 어느새 사르르…
취업준비생 김영진(24ㆍ여ㆍ가명) 씨는 얼마 전 스마트폰에서 ‘힐링’ 어플리케이션 하나를 내려받았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라는 글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김씨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랜덤채팅앱의 익명성이 ‘깜깜이 조건만남’ 등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선 정 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외로운 젊은이들이 익명 SNS에 모여 따듯한 말로 위로를 나누는 것.
‘어라운드’, ‘모씨’, ‘센티’ 등 일명 ‘힐링 어플’들은 익명으로 글을 남기면 다른 사용자들 역시 익명으로 댓글, 하트 등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공간이다.
주로 감각적인 이미지 사진과 함께 따듯한 메시지를 카드처럼 화면에 띄운다.
예컨대 누군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봤는데 구름이 예술이더라고요, 여러분도 하늘을 한 번씩 보세요”라는 글을 예쁜 하늘 사진과 함께 올리면, 여기에 공감 댓글을 다는 식이다.
이들 앱 사용자는 다른 랜덤 채팅앱에서 문제로 지적된 성매매 등을 경계하면서 유해 게시물이나 여성ㆍ특정인 비하 표현 등을 자정하려는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막말’을 하기보다는 면대면으로 터놓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는 데 집중한다. 익명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복면처럼 편안함을 준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가까운 거리에 누가 있는지 알려주고 조건만남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설계됐던 랜덤 채팅앱 보다는 순기능이 많은 것 같다”며 “얼굴을 알든 모르든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심리는 누구나 다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앱 사용자가 시작한 ‘달콤상자’는 유행으로 번진지 오래다.
누군가가 처음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1개월 정도 장기로 빌려 놓고, 좌표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면 초콜렛ㆍ사탕 등 간식과 힘이 되는 문구를 적어놓은 메모가 쌓인다. 누구나 달콤상자를 열어 간식을 꺼내 갈 수 있다. 이같은 ‘힐링 릴레이’는 계속 이어진다.
또 다른 해쉬태그(#ㆍ특정 단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를 달아 ‘1일 1선행’ 프로젝트를 하고 이를 공유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지나친 경쟁으로 다들 지쳐 있고,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며 “이런 피로감이 큰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힐링받을 수 있는 것에 눈길이 가고 집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