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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도 남도 아닌…당신에게 친척이란?
핵가족화 영향 전통적개념 급속 붕괴…이젠 명절·경조사때나 볼수있는 애매한 존재로
#1. 서울에 사는 회사원 김명인(37·가명) 씨. 얼마 전 있었던 사촌동생의 결혼식에서 한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자신의 등판을 때리며 ‘너도 빨리 가야지’라고 해 무척 당황했다. 모르는 사람의 이런 행동에 기분이 상했지만, 집안 어른 중 한분인 것 같아 그냥 ‘네’라고만 하고 넘겼다. 곁에 계셨던 어머니께 누구시냐고 물으니 오촌 당숙이라신다. 당숙이 아버지의 사촌형제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도 나중에 검색으로 알게 됐다.

#2. 경기도 일산에 사는 대학원생 오미영(26·여·가명)씨는 명절 때마다 큰할아버지댁을 찾는다. 그때마다 열다섯명이 넘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사실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더욱이 여자라 차례에도 참여를 못하고, 식사 때 겸상도 하지 않아 남자 친척들과는 말할 기회도 거의 없다. 오씨는 “26년 살도록 얼굴만 봐왔지 나랑 몇 촌인지,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아버지인지 알지 못한다”며 “몇년째 ‘벌써 이렇게 컸냐’는 말만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핵가족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한국사회의 가족관이 빠르게 변모되면서 ‘친척(親戚)’에 대한 전통적 개념도 무너지고 있다.

과거 촌락 사회에서 친척은 엄연히 가족의 일부였지만, 이젠 명절이나 경조사 때밖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면서 친척이 어느새 ‘가족도, 남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돼버렸다.

이 때문에 ‘친’하지 않으면서 ‘척(버림)’하기도 어렵다거나, 서먹하지만 ‘친(한)척’하는게 친척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에 가족, 친척 개념에 대한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노미현상’을 겪고 있다”며 “이같은 과도기 상태에서 단절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척이 점점 형식적인 관계로 바뀌다보니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결혼, 취직 등 기초적인 사항을 묻는 대화가 오가기가 쉬운데 이것은 30·40대 솔로족이나 장기 취업준비생들에겐 비수로 꽂히게 돼 점점 대면을 부담스러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고동락하며 삶의 희노애락을 나눴던 친척이 어느새 ‘명절 잔소리꾼’이 돼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와 직장인 1786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조사한 결과 구직자의 경우 1위는 ‘아직도 취업 못했니’(17.1%)라는 말이었다.

직장인 1위는 ‘사귀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하려고’(28.3%)라는 질문이었다.

친척이 사라지는 세태가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에 사는 주부 이모(56) 씨는 “요즘은 살기가 더 좋아졌는데도 친척이나 사촌들 간에 거리가 더 멀어진 것 같다”며 “20, 30년 전만 해도 서로 얼굴은 보면서 살았는데 세상이 변하게 아니라, 우리가 변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가족과 친척이 중심이던 촌락 공동체가 의미를 잃고 개인의 학교, 직장, 등 여러 사회적 관계로 확대된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친척공동체가 약화되는 것이 좋다, 나쁘다 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렇다보니 당숙, 질부(조카의 아내), 종질(사촌형제의 아들), 생질(누이의 아들) 등 친척에 대한 호칭도 점점 사전속에서만 존재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이에 유사시 대처할 수 있도록 친척간 호칭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까지 개발된 실정이다.

특히 어린 세대일수록 이같은 호칭을 대부분 잘 모르며, 친척을 가족에 포함시키는 성향도 과거보다 상당히 줄어들었다.

요새 청소년들은 오촌 뿐 아니라 자신의 사촌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세대간 의식구조 비교를 통한 미래사회 변동 전망-가족과 가정생활에 관한 의식 및 가치관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생 6979명을 대상으로 ‘가족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을 고르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오랫동안 길러온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볼 수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과반수(57.7%)에 달한 반면 ‘친척’을 가족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49.9%에 그쳤다.

서경원.이서진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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