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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락의 U턴] 집으로 싸가는 도시락, 그것도 저녁이 대세
-소풍, 점심 편의점도시락은 옛말…귀가때 도시락 싸가는 이 급증
-실제 점심도시락 보다는 저녁때 매출이 많아 쓸쓸한 시대상 반영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소시지와 김치 그리고 계란후라이만 얹혀져 있어도 ‘왕후의 밥상’도 부럽지 않았다.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 있었다면 말이다. 김칫국물이 새 책을 빨갛게 물들여도 먹을때 행복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 공부시간보다 친구와 ‘벤또’ 까먹던 시간이 더 좋았던 시절의 그 도시락. 소풍이나 가족끼리 놀러갈때나 별식으로 집에서 싸가지고 나갔던 그 도시락….


어머니 정성이 담긴 도시락은 내내 집밖에 존재하면서 학창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도시락은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지기 시작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공간 귀퉁이에 추억이란 단어와 함께 묻혀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도시락이 다시 곁으로 다가왔다. 편의점과 도시락 전문점에서 많은 도시락은 지갑 사정 빠듯한 고학생의 한끼를 책임지는, 그럭저럭 배를 채울 수 있는 존재였다. 그 도시락은 2008년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물가ㆍ고유가에 이은 금융위기 불황 여파로 소비심리는 꽁꽁얼어 붙었고 구조조정, 감원설 등으로 인해 고용불안까지 겹치면서 외식은 물론 점심값 마저 줄이려는 직장인까지 가세하면서 폭발적으로 도시락 수요는 늘어났다. 그래서 ‘점심시간=도시락’은 서민의 공식이었다.

30대 중반의 남성이 귀가 후 저녁 먹을거리를 위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하지만 이같은 도시락이 ‘외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락은 어디까지나 밖에서 먹는 것이었으나, 요즘엔 집에서 먹는 것이 됐다. 돈이 없는 청년들, 주머니사정이 녹록치 않은 직장인들도 도시락을 사와 집에서 먹는 게 요즘 트렌드다. 경기 불황이 주원인이지만, 1인가구 급증이 이런 트렌드를 견인하고 있다. 도시락이 진화하다보니 저녁 해먹기 보다 간편하게 한끼를 때울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저녁 도시락은 한 문화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도시락의 ‘골드타임’은 어찌됐든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 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저녁시간대 도시락 판매비중은 26.3%로 전년보다 1.4%포인트 증가하며 점심시간대 매출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보인다.

저녁 식사를 거르고 늦게 퇴근할때 종종 집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들어간다는 직장인 김정훈(35)) 씨가 그런 사례다. 그는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려 녹초가 된 몸으론 집에서 뭔가를 해먹을 여력이 없다”며 “집 주위 식당의 영업시간이 끝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방법이 없어 편의점 도시락을 사간다”고 했다. 또 “예전에는 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면 라면을 끓여먹거나 그냥 허기를 달래며 잠을 청했지만, 요즘에는 도시락이라는 선택지가 새로 생겨 꼭 (편의점에) 들른다”고 했다.

저녁 도시락족(族)이 급증한 것은 저렴한 가격과 풍족한 양에만 집중됐던 실속형 도시락에서 건강과 웰빙을 중심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프리미엄 제품들로 진화하면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도 한 원인이다.

직장인 이대건(37) 씨는 갑자기 지방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돼 가족들과 뜻하지 않게 생이별 중이다. 그는 “궁색하게 저녁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느니, 영양도 좋고 맛도 좋은 도시락에 푹 빠지게 됐다”고 했다.

이같은 저녁 도시락 문화에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 삶에 여유가 부족하다보니 이같은 ‘컴백 홈 도시락’ 문화가 형성된 것이며 씁쓸한 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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