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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깨진 결혼인데”…유책주의 유지에 한숨 늘어가는 부부들
[헤럴드경제=강승연ㆍ김진원 기자]#. 1996년 결혼한 박지향(가명)씨는 첫째를 임신하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무렵 날벼락을 맞았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된 부부싸움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번진 것. 임신 8개월, 만삭에 가까운 배를 발로 채이고 충격을 받은 박씨는 친정으로 피신했고 신혼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번 틀어진 둘 사이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박씨는 지난해 이혼 얘기를 꺼냈지만 그의 외도 전력이 문제가 됐다. 남편은 그가 과거 채팅으로 알게 된 다른 남성과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걸고 넘어지며 “유책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못 한다”고 이혼을 거부했다. 겨우 협의이혼 동의를 받아냈지만, 법원에 번번이 나타나지 않은 남편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결혼생활 파탄에 책임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유지하기로 한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가족ㆍ혼인제도를 보호했다는 환영의 목소리 뒤에는 “국가가 억지로 불행한 혼인관계를 강제해선 안 된다”며 한숨을 쉬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특히 한번 갈라질 결심을 한 부부는 정상적인 혼인생활로 돌아가기 어려워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대방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재판상 이혼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들춰내 공격하고 비난하는 데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지난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녀들 역시 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유책주의는 이혼 과정에서 서로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혹여 이혼청구가 기각되면 그동안 서로 흠집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됐음에도 불행한 혼인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책주의가 지켜졌던 기존에도 귀책사유가 없는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혼이 성립되는 등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남편의 상습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갔다가 되려 남편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한 A씨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다.

1심은 유책주의를 들어 남편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혼을 허용했다. ‘자녀들의 피해가 우려돼 이혼이 꺼려진다’는 A씨 편지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A씨 자신은 이혼을 원한다고 보고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A씨는 대법원 상고와 파기환송심 끝에야 이혼을 취소할 수 있었다.

spa@heraldcorp.com



사진1>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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