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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플 혁신, 잡스의 ‘유아독존’에서 팀쿡의 ‘자기부정’으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스티브 잡스의 ‘유아독존’에서 팀 쿡의 ‘자기부정’으로.

지난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는 애플의 추구하는 혁신의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그것은 독자적인 기술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플랫폼, 그리고 가격정책으로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왔던 ‘유아독존’식의 전략에서 탈피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자기부정’으로의 전환이다. 

애플의 마법 8년. 지난 2007년 첫 아이폰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왼쪽)와 지난 9일 아이패드 프로를 공개하는 팀 쿡. [사진=게티이미지]

▶애플의 마법…스티브 잡스의 ‘유아독존’

아이폰이 첫 출시된 2008년 이후 애플은 시장의 일반화된 게임 규칙을 깨며 승승장구했다. ‘애플의 마법’이라 불렸다. 유아독존식의 전략이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 등 지극히 단순화된 고급 소품종에 집중하며 경쟁사나 시장의 동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가 정책을 펴왔다. 제품과 기술의 표준도 무시하고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고집해왔다. 새로운 제품의 타깃을 우선적으로 기존 애플 제품 소비자로 설정하며 일종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고 아이폰의 판매 신장률도 갈수록 하락하면서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왔던 ‘마법’이 약점이자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 앞서 “투자자들은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새로운 아이폰도 경제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애플의 발표회 직후 지난 9일 뉴욕증시에서 장 초반 상승하던 애플 주가는 1.92% 하락세로 마감했다. ‘깜짝 뉴스’가 없었다는 말이다. USA투데이는 “놀랄 일은 없었다. 사전에 떠돌던 소문은 대부분 맞았다. 스티브 잡스 시대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의 발표회 직후 “8년 동안 계속 애플의 아이폰은 여전이 룰을 깨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처음 소개된 지 8년 동안 아이폰은 지구 최대의 게임에서 승리자가 돼 왔다, 승리는 계속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히려 이 반응이야말로 애플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업계와 투자시장에 드리워진 지배적인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이폰이 앞으로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 모든 수익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애플이 압도적인 선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애플의 마법이 얼마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있다”고 했다.


▶한계 이른 애플의 마법

일단 소품종에 집중해왔던 결과는 지나친 아이폰 의존도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 의존도는 올해 최고에 달해 회사 전체 매출의 68%, 출하량의 75.1%에 이르렀다.

고가의 가격정책도 미국 이동통신사들의 약정 및 보조금제 폐지와 전세계 시장에서의 중저가폰 열풍 등으로 인해 아이폰판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정책도 최근 호환성과 범용성을 강화한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10 등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 섰다.

지난해말과 올해까지 애플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가져다줬던 ‘중국 특수’도 올해는 불투명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와 중국 경제 부진, 위안화 가치 등도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애플에는 위험요소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재프리의 애널리스트 진 문스터는 기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아이폰6S와 아이폰6S의 판매 증가율은 전작 대비 4%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이폰의 판매성장률이 2016년 4분기를 기점으로 마니어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전에 없던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애플의 마법도 마감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팀 쿡의 새로운 전략 ‘자기부정’

이에 대응하는 애플의 전략은 ‘자기 부정’이다.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애플 CEO 팀 쿡은 전임자가 쳐놓았던 금기를 과감하게 깨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애플 펜슬이다. 이번 애플의 신제품 발표행사에서 가장 큰 화제 중의 하나는 12.9인치로 커진 태블릿PC 아이패드 프로와 함께 공개된 ‘애플 펜슬’이었다. 99달러로 별도 구매품인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 프로의 스크린에 직접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스타일러스 펜이다. 애플의 마케팅 담당 수석 필 실러가 무대에 올라 아이패드 프로를 위한 스타일러스 펜을 ‘애플 펜슬’이라고 부르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모바일 기기와 연동되는 펜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 가장 꺼리던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지난 2007년 첫 아이폰을 발표하는 무대에서 “누가 스타일러스펜을 원할까? 펜을 쓰고 놔두고 결국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웩, 아무도 펜을 원하지 않는다, 터치할 수 있는 세상의 가장 좋은 도구는 누구나 갖고 태어난다, 손가락이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8년 후 스티브 잡스가 ‘웩’이라고 조롱했던 스타일러스가 애플의 새로운 상품으로 출시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애플은 노트북PC처럼 활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PC 서피스를 염두에 둔 듯, 아이패드 프로와 연결해 쓰는 키보드까지 내놓았다. 단 하나의 기기와 손가락만으로 제품의 사용 환경을 단순화시키고자 했던 스티브 잡스의 뜻을 뒤집은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애플 CEO 팀 쿡은 지난 아이폰6에서 ‘터부’를 깼다. 스티브 잡스는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의 스마트폰을 고집했지만, 팀 쿡은 패블릿 인기의 추세를 따라 화면을 키운 4.7인치와 5.5인치의 아이폰을 만들어 대성공시켰다.

제품과 서비스도 다양화하고 있다. 팀 쿡의 애플은 스마트워치를 출시한 데 이어 애플 뮤직과 애플 TV 등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TV스트리밍 서비스와 컨텐츠 제작 사업 진출도 예상된다.

새로운 가격정책도 발표했다. 애플이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해 발표한 새로운 할부판매제는 소비자가 애플과 직접 2년 약정을 하고 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면 1년마다 최신 아이폰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매달 할부금은 아이폰 신작 중 제일 저렴한 모델인 16GB의 아이폰 6S의 경우 32.41달러, 제일 고가인 128GB의 아이폰6S플러스가 44.91달러다.

애플의 새로운 할부금융프로그램이 기존과 다른 것은 소비자가 통신사와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애플과 직접 약정한다는 데 있다. 애플은 신작 발표행사에서 아이폰6S와 아이폰6S플러스(16GB)의 가격을 기존 (통신사) 약정 기준으로 각각 199달러와 299달러라고 공개했으나, 최근 미국 내 1위 사업자인 버라이즌을 비롯한 미국의 통신사들은 약정 및 단말기 보조금 제도를 속속 폐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비롯한 단말기에 대한 구매 부담이 훨씬 커졌다.

애플의 새로운 할부금융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성장이 둔화되는데다 미국 내에서는 단말기 가격 부담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중저가폰으로 쏠리거나 교체 주기가 길어져 아이폰의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휴대폰의 교체 주기가 길어지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통신 컨설턴트사인 치턴 샤머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휴대폰 교체 주기는 지난 2010년 18.2개월에서 올해 26.3개월로 대폭 길어졌다.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은 사용자들이 1년마다 최신폰으로 바꾸게 함으로써 아이폰의 소비를 확대하고, 통신사 대신 애플이 직접2년 약정에 나섬으로써 기존 고객들을 유지하려는 애플의 ‘마케팅 혁신’인 셈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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