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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별 그대’ (보증부) 월세
제 이름은 전세입니다. 대한민국 토종이지요. 조선시대 말에 태어났으니 120살이 넘었네요.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의 주인공 도민준과도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문헌에도 제 출생 얘기가 나옵니다. 고종 13년(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에 따른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제가 잉태됐다고 합니다.


저는 한때 도민준 역의 김수현 처럼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저를 좋아했지요. 없는 사람들에게 저는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해주는 종자돈이었습니다. 얼마간의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겨놓고 주거를 해결하면서 한푼 두푼 저축하다보면 어느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지요. 집을 살때도 보증금 몫이 크니 이를 안으면 구입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세입자에게 받은 목돈으로 적당히 이자놀이를 하다 집값이 뛰면 팔아치워 짧짤한 시세차익을 누렸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호시절 이었지요.

그러나 어느날 도민준 같은 외래종인 월세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저는 ‘공공의 적’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월세는 서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승을 부리는 놈은 보증부 월세(보증금+월세)라는 변종입니다. 제 이름을 차용해 ‘반전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1%대의 사상최저 금리 시대를 맞아 전세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아진 집주인들이 고심 끝에 해결사로 불러들인 놈이지요. 전세 보증금을 왕창 낮추고 나머지 금액을 월세로 돌려 수익 보전에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월세 금리가 가히 징벌적입니다. 은행 대출금리는 높아야 연 3% 정도인데 월세는 연 8~9% 금리로 환산해 받고 있습니다. 오르지 않는 집값에 대한 보상을 월세로 받겠다는 심산인가 봅니다.

보증부 월세의 ‘갑질’이 만연하다 보니 저를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세난민’입니다. 집주인들이 세운 보증부 월세의 장벽은 서민들이 넘기에 강고하기만 합니다. 흡사 중동ㆍ아프리카의 난민들을 배척하는 헝가리의 높은 팬스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운 좋게 저를 만나기라도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라듭니다. 서울 성북구 아파트 가운데는 제 몸값이 집값을 넘어서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미친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난민들이 쏟아지는 가을 이사철에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텐데…. 혹여 ‘송파 세모녀’의 비극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보증부 월세, 이 놈을 도민준 처럼 자신의 별로 돌려 보내고 싶습니다. 소득의 대부분을 다락 같이 오른 월세 내느라 서민들의 삶이 한층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여행은 엄두 조차 못냅니다. 가계부채 1100조의 방아쇠를 당긴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놈 입니다. 이 놈 꼴 보기 싫어 울며겨자먹기로 대출받아 집을 사거나 ‘억’ 소리나는 전세금을 충당한 사람이 부지기숩니다. 미국이 곧 금리라도 인상하게 되면 상환 부담이 눈덩이 처럼 커지지 않을까 잠을 설칩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월세의 도도한 흐름은 저를 밀어내는 ‘장강의 뒷 물결’ 같습니다. 떼어낼 수 없다면 함께 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주(住)의 안정이 국민행복의 기본이니까요.


<요약분>소득의 대부분을 다락 같이 오른 월세 내느라 서민들의 삶이 한층 팍팍해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 월세의 도도한 흐름은 전세를 밀어내는 ‘장강의 뒷 물결’ 처럼 거세다. 떼어낼 수 없다면 함께 살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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