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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을에서 답을 찾다> 현대사회 문제 마을이 해결 ‘정책 패러다임 변화’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3년차로 아직은 생소
-시민주도 7만명 참여ㆍ2700여개 모임 활성화
-자생력 확보까지 2~3년간 지속적으로 예산 지원
-신정동 이펜하우 ‘육아’ㆍ‘교육’으로 공동체형성



[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1인당 국민소득 2만8180달러, 세계 13위 경제대국, 기대수명 81.9세…’.

끼니를 거르던 시절, 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성장은 기적에 가까웠다. 배고픔은 이겨냈지만 행복을 채워주진 못했다. 삶은 더 팍팍해졌고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다. 사는 재미가 사라졌다.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관악구 행운동 옥상텃밭.

결국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진단이 나왔다. ‘위험사회’. 28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위험사회’라는 책이 국내에서 유행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가 아이러니하게 ‘위험사회’에 빠진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범죄율은 1981년 935건에서 2012년 2039건으로 2.2배, 자살률은 1983년 8.7명에서 2013년 28.5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 0.266에서 지난해 0.308로 악화됐다.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해졌고 우울해졌다.

변화가 필요했다. ‘국민행복시대’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소소한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은 혁신이 필요했다. ‘마을의 회복’이 그것이다.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마을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일종의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다.

후암동 마을축제에 판매할 업싸이클링 병따개를 나무로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하고 있는 모습.

과연 마을의 회복이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헤럴드경제는 3년째 마을공동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시의 사례를 살펴보고 실제로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기획보도로 짚어본다.

성북구 참길음공동체사업단 참여단체 대표 및 주민들이 2015년 사업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 서울 신정동 대단지 아파트인 이펜하우스. 지난 2012년 4월 아파트 신축과 함께 작은 도서관 ‘나무그늘’이 개관했다. 나무그늘은 영유아 및 초등학생 부모들로 늘 붐볐다. 이들의 관심은 단연 ‘육아’와 ‘교육’이었다. 공통된 관심사로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이 때부터 나무그늘의 변신이 시작됐다. 평범한 책 읽는 도서관에서 ‘체험하는 도서관’으로 진화했고 도시락을 먹고 즐기는 ‘락(樂) 파티’ 공간으로 발전했다. 주민 모임은 계속 생겨났다. 지금은 아파트 안전을 지키는 ‘자율방범대’, 마을 축제를 주관하는 ‘라온지기’, 노래를 사랑하는 모임인 ‘이펜합창단’ 등 16개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이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워낙 종류가 다양해 일반화하기 어려운데다 점 조직 형태로 생겨나기 때문에 시민들이 체감하는데 한계가 있다. 서진아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마을공동체는 서울시가 개입하기 이전부터 지역사회에 있었다. 부녀회나 반상회가 그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마을공동체로 묶고 좀더 효과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하나의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 ‘정치 조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7만명 참여ㆍ2700여개 모임=마을공동체 사업의 핵심은 ‘주민 주도 모임’이다. 그러나 서울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만큼 불가피하게 최소한의 형식을 갖춰야 했고, 행정을 모르는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됐다. 사업 초기 각종 단체들이 마을공동체 사업의 주체로 등장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청년 마을살이 발전소 ‘위너스’ 친구들이 야구단을 창단한 후 첫 사회인 야구 친선경기에 출전해 단체사진을 찍고있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면서 체계를 잡아갔다. 서울시와 자치구에 마을공동체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민관협치기구인 마을공동체위원회를 구성하고 행정지원조직인 종합지원센터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 마을공동체 사업 신청 조건을 확 바꿨다. 기존에는 10~15명이 모여야 마을공동체 사업을 신청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이 조건을 ‘주민 3명’으로 확 낮췄다. 서진아 담당관은 “획기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사업 신청 조건이 바뀌면서 단체 중심의 마을공동체 사업이 주민 주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주민과 단체의 사업 신청 비율은 각각 14%, 86%였지만, 지난해는 62%, 38%로 뒤바뀌었다. 올해는 전체 2700여개 마을공동체에 7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서울시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관건’=마을공동체 사업이 주민 주도로 자리를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즉 서울시의 예산 지원 없이 자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시가 올해 마을공동체 사업에 주안점을 두는 부분도 이것이다.

서울시는 마을공동체의 종류에 따라 2~3년까지 지속적으로 예산을 지원한다. 그사이 주민들이 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 마을공동체는 유지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특히 임대료를 내야 하는 ‘공간’ 중심의 마을공동체가 받는 타격은 크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예산은 투입했는데 성과는 없게 된다.

마을공동체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올해 마을공동체 성공모델을 육성하기로 했다. 서울 시내 4개 학교를 대상으로 ‘마을과 함께 하는 학교’ 사업을 추진하고 방과후 돌봄과 교육을 마을에서 진행하는 주민 모임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위례, 마곡, 내곡 등 신규 아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공동체 대표모델도 발굴할 계획이다.

서진아 담당관은 “마을공동체 참여자 대부분이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지고 지역시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면서 “수익금 등을 모아 마을기금을 만들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을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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